728x90
나비표본 상자
마경덕
화려한 옷들이 진열장에 걸려 있다. 나비는 바느질의
달인. 생전에 가봉을 하던 버릇대로 가슴에 시침핀을 꽃
고 있다. 덧댄 자국 없는 천의무봉의 솜씨들. 그 동안 주름
잡은 허공은 몇 필인지?
꽃밭은 원단 도매상, 치수에 밝은 나비는 둘둘 말린 대
롱줄자를 꺼내 길이를 잰다. 갖가지 원단은 꽃에서 나온
다. 호랑나비 가문은 얼룩무늬, 배추밭이 친정인 노랑나
비는 배추고갱이처럼 노랗다. 대대로 한 무늬만 고집한
계보에 유행은 없다.
옷 한 벌을 짓기 우해 평생을 바친 장인들, 날개옷 한 벌
을 완성하고 유리무덤에 갇혔다. 입으면 벗을 수 없는, 아
름다운 그 옷이 화근이다.
나비는 죽어도 날개를 접지 않는다.
ㅡ시집『글러브 중독자』(애지, 2012)
2021년 1월 7일 13시 17분
'2021 다시 필사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외출학개론 / 마경덕 (0) | 2021.01.19 |
---|---|
<시>쥐똥나무 /마경덕 (0) | 2021.01.19 |
<시조>숫돌을 읽다 /허정진(2021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0) | 2021.01.19 |
<시조>적화(摘花) /이명숙 (0) | 2021.01.19 |
<시>바람의 유전자를 보았다 /마경덕 (0) | 2021.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