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다시 필사 시

<시>순한 골목 /박한(24회 지용신인문학상 당선작)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 19.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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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한 골목

 

박한

 

 

골목은 왜 이리 얌전한지

자꾸만 쓰다듬고 싶어요

숨을 쉬는데

신호를 기다릴 필요가 없어요

손가락 마디를 보면

내가 헤맸던 길목을 알 수 있죠

매일 걸어다녀도

달이 지는 법은 배울 수가 없어요

사실 골목은 지붕들이 기르는 것이라서

부르는 이름들이 달라요

고장 난 컴퓨터였다가

산지 직송 고등어였다가

김숙자 씨였다가

지현이 엄마였다가

가끔은 현석아 놀자가 돼요

왜 골목이

밤이면 군데군데 멍이 드는지

술 취해 돌아오는 일용직

김기석씨를 보면 알죠

그래도 골목은 도망치지 않습니다

쫓기는 사람들이

모두 골목으로 숨어드는지는

좁아야만 이해하는 습성

나도 쫓아오는 생활을 따돌리고

골목에서 뒷발로만 서 봅니다

창밖에선 내가 걸어가고 있고요

멀리 돌아갈 수 없는

직선이 없는 지도는

여기에서 발명되었습니다

깨우지 마세요

난폭하진 않지만 겁이 많은 사람들이

불빛을 말고 숨어버릴지도 몰라요

쫑긋 세운 옥상들이 바람을 듣고 있습니다

 

20211152118분 금요일

<24회 지용신인문학상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