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다시 필사 시

<시>버블 스토리 /최영랑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 19.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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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스토리

 

최영랑

 

 

그의 웃음은 나만 아는 바깥입니다

 

그 웃음은 가볍고 부드러운 거품이어서

누구에게나 쉬이 얹힙니다

거품 속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새롭게 형성되는 그룹들

관계의 밀도가 조밀해집니다

나는 거품의 추종자가 됩니다

그럴 때 내게서도 거품 하나가 피어납니다

 

거품은 서로에게 섞여 마모될 필요가 없습니다

가까워지는 이마와 이마, 같은 연대기를 만듭니다

이건 목적에 깃든 밀착의 힘

 

허구와 허구가 만나면

꿈틀거리는 루머들

이야기는 부풀길 좋아해서 터지지 직전까지

자라는 말풍선들

 

끝없이 이야기의 곁가지가 늘어납니다

복선처럼 바깥에 무지개가 피어나 나는 그만 아찔해집니다

활짝 핀 오후 소문은 절정입니다

터질 생각이 없습니다

 

거품이 거품으로 목욕을 합니다. 친절한 거품,

그와 나의 은밀한 가능성까지 씻어낼 필요도 없는데

흉터까지 가려줍니다

이제 거품 속 알몸은 내내 안전합니다

 

 

시집발코니 유령실천문학, 2020)

 

2021 1 16일 오후 2 12분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