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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토解土
김효정
겨우내 굳어있던 체위가 근질거리는 걸까
오늘따라 저수지 옆, 볕바라기 하던 둔덕이 소란스럽다
봄 햇살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실금 하나 그었나 보다 아직 얼음을 품고 짱짱하던 흙이 힘없이 부스러진다 징검다리 건너듯 띄엄띄엄 긴장이 풀리더니, 대책 없는 떨림이 곳곳에서 감지 된다 마지막 자존심인양, 꽃샘바람이 한나절을 흘기다 간다
양지바른 둔덕이 꼼지락꼼지락 애기 쑥을 밀어올린다 단전에 힘을 주는 태도에서 봄을 먼저 챙기려는 치열함이 엿보인다
바람도 한몫 거드는 사이, 은빛 솜털 보송보송한 버들강아지도 욕심껏 챙긴 봄빛을 담고 터질 듯 탱탱하다
한바탕 소란에 체감온도가 높아진 것을 직감한 걸까, 날선 바람은 어느새 지워버리고 살랑대는 바람을 불러 모은다 땅에 납작 엎드렸던 냉이들도, 제멋대로 엉켜 널브러진 잡초들도, 지난봄에 뒹굴었던 체온을 기억해냈는지, 서로 껴안고 나브낀다
촉촉한 손길을 기다렸던 오롯한 숨결들
봄비가 땅의 지퍼를 열고
땅 밑의 숨결들을 땅 위로 불러낸다
―<제16회 사계 김장생 신인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2018년 1월 18일 14시 22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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