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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백합
조정인
모래가 우는 소리에 잠이 깼다. 지평선을 더듬어 스핑크스가 오고 있다.
그것은 이제 막 잠에서 눈 뜬 백합의 얼굴.
당신의 검정개 릴리는 밤새 발목의 피를 핥았다한다. 지혈이 안 된다한다.
나의 베갯잇에 마른 눈물이 버석거리지만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모래공동체 모래들은 서로에게 기대 마른 울음을 운다.
벌판 끝 여윈 집, 새벽 창문이 흘리는 불빛으로 당신이 있다.
눈보라 자욱한 벌판을 품은 당신, 흰죽이 눋지 않게 젓는
캄캄한 냄비바닥은 유빙처럼 흘러 어디로 가나.
당신은 생활이라는 무섭고 슬픈, 침묵하는 책을 베고 잠시 눈을 붙인다.
검은 장정의 두꺼운 책이 품은 어슴프레한 회랑을 지난간다.
백합이 좀 더 벌어졌다. 스핑크스가 좀 더 가까이 다가와 있다.
스핑크스여,이제 네가 대답할 차례다. 아침엔 네발로 기고
낮에는 두 발 저녁엔 세 발로 걷는, 털 없는 짐승 울음으로 출렁이는
붉은 짐승을 자궁 밖으로 밀어낸 자의 이름은
무엇?
―무크지『김해문학』(2020년 제33호)
2021년 1월 18일 20시 7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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