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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 파는 노인
이종섶
종일 바닥에 앉아 목도장을 파는
정선 5일장 백발의 노인
손발도 없는 몸통에
화인 같은 얼굴을 달아주면서
평생 외기를 걸어왔다
이리저리 칼을 대는 순간
동그란 평원에 계곡이 파이고 산이 솟았다
물이 흘러가고 바람이 불어오고
벼락에 맞아 부러지거나 폭설에 막히면서도
낯선 이름 새기며
모질게 견뎌왔던 세월
호명되기만을 기다리며
뭉툭한 나무속에서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온
상형문자들의 기지개
구불구불한 길을 파려고
각을 세월 흐르며 깎는 강물을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보았던 것일까
몸 속의 물기를 말려
정갈한 도장목 한 그루가 되어가는
노인의 굽은 등 뒤로
노을이 진다
붉은 인주를 묻혀 찍어보는
마지막 낙관
심장이 뜨겁다
<제5회 문경문학상 당선작>
2021년 1월 19일 오후 3시 28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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