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다시 필사 시

<시>도장 파는 노인 /이종섶(제5회 문경문학상 당선작)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 1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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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 파는 노인

 

이종섶

 

 

종일 바닥에 앉아 목도장을 파는

정선 5일장 백발의 노인

 

손발도 없는 몸통에

화인 같은 얼굴을 달아주면서

평생 외기를 걸어왔다

 

이리저리 칼을 대는 순간

동그란 평원에 계곡이 파이고 산이 솟았다

 

물이 흘러가고 바람이 불어오고

벼락에 맞아 부러지거나 폭설에 막히면서도

낯선 이름 새기며

모질게 견뎌왔던 세월

 

호명되기만을 기다리며

뭉툭한 나무속에서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온

상형문자들의 기지개

 

구불구불한 길을 파려고

각을 세월 흐르며 깎는 강물을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보았던 것일까

 

몸 속의 물기를 말려

정갈한 도장목 한 그루가 되어가는

노인의 굽은 등 뒤로

노을이 진다

 

붉은 인주를 묻혀 찍어보는

마지막 낙관

심장이 뜨겁다

 

 

<5회 문경문학상 당선작>

 

2021119일 오후 328/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