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다시 필사 시

<시>정자나무를 품다 /염병기(2016년『동양일보』(신춘문예 당선작)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 1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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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나무를 품다

 

염병기

 

 

내 고향

동구 밖

수백 살 나이에 지난 세월 움켜진 정자나무는

마을의 수호신守護神이다

 

고향길에

어김없이 지나야 하는 그곳은

돌담길에 호박 엮이듯

어릴 적 추억들도 걸려 있다

 

옹기종기 모여 동네의 쉼터로

부초처럼 동네를 돌아다니는 이야기

풍문으로 떠돌던 이끼 낀 세월의 얘기도 묻혀 있고

저마다 자신만의 사연으로 바라본다

 

만만치 않는 세상 삶이 고달플 때

의연함으로 시절을 버틴 정자나무는

살아온 날에 대한 다독임

살아갈 날에 대한 묵묵함으로 속마음을 대신한다

 

한움큼씩 안고 사는 시린 사연도

송두리째 흔들었던 삶의 모습에도

지나온 세파에 견딘 세월의 약으로

그 앞에 서면 살포시 봄눈 녹듯 치유가 된다

 

고향 정자나무에서 느끼는 바람결

한 자락 쓸어담아 가슴에 품는다

말 없는 살랑거림은 존재 의미를 더하고

굳건함은 의지에 다시 일어나 시작할 마음을 부추긴다

 

 

2016동양일보(신춘문예 당선작)

2021119일 오전 1126/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