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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나무를 품다
염병기
내 고향
동구 밖
수백 살 나이에 지난 세월 움켜진 정자나무는
마을의 수호신守護神이다
고향길에
어김없이 지나야 하는 그곳은
돌담길에 호박 엮이듯
어릴 적 추억들도 걸려 있다
옹기종기 모여 동네의 쉼터로
부초처럼 동네를 돌아다니는 이야기
풍문으로 떠돌던 이끼 낀 세월의 얘기도 묻혀 있고
저마다 자신만의 사연으로 바라본다
만만치 않는 세상 삶이 고달플 때
의연함으로 시절을 버틴 정자나무는
살아온 날에 대한 다독임
살아갈 날에 대한 묵묵함으로 속마음을 대신한다
한움큼씩 안고 사는 시린 사연도
송두리째 흔들었던 삶의 모습에도
지나온 세파에 견딘 세월의 약藥으로
그 앞에 서면 살포시 봄눈 녹듯 치유가 된다
고향 정자나무에서 느끼는 바람결
한 자락 쓸어담아 가슴에 품는다
말 없는 살랑거림은 존재 의미를 더하고
굳건함은 의지에 다시 일어나 시작할 마음을 부추긴다
―2016년『동양일보』(신춘문예 당선작)
2021년 1월 19일 오전 11시 26분/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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