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씨름
난장 이 끝났다 작업복
소매 속이 썰렁한 장바닥.
외지 장꾼들은 짐을 챙겨
정미소 앞에서 트럭을 기다리고
또는 시름판 뒷전에 몰려
팔짱을 끼고 술렁댄다
깡마른 본바닥 장정이
타곳 씨름꾼과 오기로 어우러진
상씨름 결승판. 아이들은
깡통을 두드리고 악을 쓰고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구르지만
마침내 나가떨어지는 본바닥
장정. 백중 마지막 날.
해마다 지기만 하는 씨름판
노인들은 땅바닥에 침을 배앝다.
타곳 씨름꾼들은 황소를 끌고
장바닥을 돌며 신명이 났는데
학교 마당을 벗어나면
전깃불도 나가고 없는 신작로.
씨름에 져 늘어진 장정을 앞세우고
마을로 돌아가는 행렬은
참외 수박 냄새에도 이제 질리고
면장 집 조상꾼들처럼 풀이 죽었다.
07/12/27/아참 8시7분
5
파장罷場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애기 조합빚 애기
약장수 기타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싯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여름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07.12.27/8시21분
6
제삿날 밤
나는 죽은 당숙의 이름을 모른다
구죽죽이 겨울비가 내리는 제삿날 밤
할 일 없는 집안 젊음이들은
초저녁부터 군불 지핀 건넌방에 모여
갑오를 떼고 장기를 두고.
남폿불을 단 툇마루에서는
녹두를 가는 맷돌소리.
두루마기 자락에 풀비린내를 묻힌
먼 마을에서 아저씨들이 오면
우리는 칸델라를 들고 나가
지붕을 뒤져 참새를 잡는다
이 답답한 구석에 구죽죽이
겨울비가 내리는 당숙의 제삿날 밤.
울분 속에서 짧은 젊음을 보낸
그당숙의 이름을 나는 모르고.
07.12.27/아침 8시40분
'2008 필사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정희 시집.........첫째거리-축원마당 (0) | 2021.01.19 |
---|---|
나의 포르노그라피/박이화 -상한 영혼을 위하여/고정희 -그대 생각/고정희 (0) | 2021.01.19 |
수필 따라 써보기 -좋은 생각 12월호에서 /천양희 (0) | 2021.01.19 |
따라 써보기 -떠도는자의 노래 신경림/이름을 지운다 허형만/희망 나태주/졸부가 되어 김희구 (0) | 2021.01.19 |
신경림 시선집 1.....1 2 3 (0) | 2021.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