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포르노그라피/박이화
썩은 사과가 맛있는 것은
이미 벌레가
그 몸에 길을 내었기 때문이다
뼈도 마디도 없는 그것이
그 몸을 더듬고, 부딪고, 미끌리며
길을 낼 동안
이미 사과는 수천 번 자지러지는
절정을 거쳤던 거다
그렇게
처어철 넘치는 당도를 주체하지 못해
저렇듯 덜큰한 단내를 풍기는 거다
봐라
한 남자가 오랫동안 공들여 길들여 온 여자의
저 후끈하고
물큰한 검은 음부를
07.12.24 낮12시 45분 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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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상한 영혼을 위하여/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서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리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음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리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리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나니.
07.12.24 낮1시21분 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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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대 생각/고정희
아침에 오리 쯤 그대를 떠났다가
저녁에 십리 쯤 되돌아와 있습니다
무심함쯤으로 하늘을 건너가자
바람처럼 부드럽게 그대를 지나가자
풀꽃으로 도장 찍고
한 달음에 일주일쯤 달려가지만
내가 내 마음 들여다보는 사이
나는 다시 석달쯤 되돌아와 있습니다
07.12.24 낮1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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