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우리 아들딸의 혼백 깃들 곳 어딥니까
날아가는 새들도 깃들 곳 있고
흐르는 강물도 쉴 곳이 있다지요
지나가는 바람도 멈추는 곳이 있고
한철 장마비도 그칠 때가 있다지요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고
태어나는 사람마다 생기복덕 따로인데
비명에 죽어간 우리 아들딸 혼백은
높고 높은 하늘에도 깃들지 못하고
죄 많은 에미 가슴통 파고 들어앉아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애갖장 찢는 호곡소리*
음산한 구천에 비길바 아닌지라
태어나는 목숨에
피를 주고 살을 주는 어머니여,
에미 가슴 속에 묻어둔 시체
육탈도 안되고 씻김도* 안된 시체
살아 있는 등짝에 썩은 살로 엉겨붙어
어머니 원 풀어주세요,
호령을 했다가
육천 마디 모세혈관에 검음은 피로 얼어붙어
어머니 우리 진실 밝혀주세요,
구곡간장 찢는 소리에 세월 이옵니다
내려놓을 수도
벗어놓을 수도 없는 시체
도망갈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시체
시체 썩는 냄새로 일월성신 기웁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데 없는
부모심정, 에미 심정으루다
비명횡사당한 아들 이름 부르며
억울하고 불쌍한 어린 혼백 이름 부르며
광범아......
재수야......
영진아......
금희야......
춘애야......
선영아......
용준아......
관현아......
한열아......
성만아......
차마 울 수조차 없는 이름 부르며
어느 누가 울리는 초혼인가 하옵거든
한 어미 설움 푸는 사연이 아닙니다
한 지붕 재앙 막는 사연이 아닙니다
감출 것도 보탤 것도 없는 사태
저 오월사태 먹구름 속에
아서라 눈감고
아서라 아서라 입 막고
아서라 아서라 아러사 귀막은 팔년 세월
무정한 세월 있습니다
칠성판도 관도 없이 암장한 혼백들
낮이면 땅끝 만리까지 엎드려 울고
밤이면 하늘끝 억만리까지
사무쳐 소리치는 사연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한국판 아우슈비츠라 부릅니다
아아 그러나 광주사람들은 그것을
십일 간의 해방구라 부릅니다
07.12.30./차임 11시 2분
호곡號哭 - 목놓아 슬피 욺 또는, 그 울음.
대감굿 - 대감놀이 - 무당이 터줏대감을 모셔서 춤추고 풍악을 울려 즐겁게 하며, 재앙을 물리고 복을 비는 굿./ 열두거리굿 가운데 제일 중요하다고 하여 열두거리굿 전체를 일컫는 말
재수굿 - 집안에 재수가 있기를 바라고 비는 굿.
우환굿 - 집에 우환이 있을 때 하는 굿.
안택굿 - 주로 시월 상달에 무당이 집안의 터주를 위로하는 굿/
시월상달 - 햇곡식을 신에게 드리기 가장 좋은 시월.
생기복덕 - 生氣福德일 - 생기일과 복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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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저들이 한반도의 정적을 찢었습니다
한반도가 계엄령의 정적에 무릎끊고
입 있는 자마다 재갈이 물리고
사지에 침묵의 포승을 받던 그날,
감옥으로 감옥으로 향하던 그날,
어두운 역사의 길고 긴 능선 따라
햇불 행진으로 타오르던 광주
복종과 억압을 내리치던 광주
생명의 기운으로 용솟음치던 광주
대견하다 아들아
장하다 딸들아
느희들이 우리 죄업 다 지고 가는구나
우리 시대 부정을
느희들이 다 쓸어내는구나
식당조바 우리 아들들.....
호남전기 생산부 우리 딸뜰......
넝마주이 우리 아들들.....
황금도 홍등가 우리 딸들.....
전지용접공 우리 아들들.....
술집 접대부 우리 딸들.....
구두닦이 우리 아들들......
야간학교 다니는 우리 딸들......
무의탁소년원 우리 아들들......
방직공장 우리 딸들......
주저없이 망설임없이
총받이가 되고 칼받이가 된 저들
진압봉에 머리 맞아 쓰러진 저들
넘어지고 짓밟힌 저들
개 패듯 두들겨맞고 옷 벗기고
드름엮어 실려간 저들
귀가 찢어지고 손발이 찢어진 저들
두 눈이 뛰어나온 저들
뒤통수가 박살이 난 저들
기총소사에 지천으로 누워버린 저들
얼굴에 페인트칠을 당하고
어머니, 억울해요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진 저들
통곡의 행진 속에 매장된 저들
저들이 광주를 우뚝 세웠습니다
저들이 광주를 들어올렸습니다
최후의 보루인 저들
혁명의 대들보인 저들
저들이 한반도의 정적을 찢었습니다
저들의 혼백 깃들 곳 어딥니까
우리 아들 혼백 깃들 곳 어딥니까
우리 딸 혼백 깃들 곳 어딥니까
우리 남편 혼백 깃들 곳 어딥니까
7. 휴전선이 없는 보름달
아들아,
오월비 내리다
불쌍하고 애달픈 것
네 눈물비 오월산천 적신다
지리산 철쭉밭에
네 눈물비 내린다
백두산 천지연에
네 눈물비 흐른다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분단의 벽 허무는 큰 강물 흐른다
딸들아
밤하늘에 네 얼굴 보름달 떴다
별 떴다
가련하고 서글픈 것
네 혼백 떴다
우리 고통 함께 떴다
우리 슬픔 함께 떴다
삼팔선이 없는 보름달
철조망이 없는 별빛
높게 멀리
서방정토 극락까지 맑게 떴다
청춘아
바람 분다 네 바람 분다
오월바람 자유바람
통일바람 분다
아버지가 박은 말뚝
어머니까 박은 말뚝 휙 뽑아제끼며
한반도의 봄바람 분다
광주의 봄바람
서울의 봄바람
칠천만 겨레의 봄바람 분다
사랑바람 눈물바람 분다
열사여
백골난망 천지에 흰눈 내린다
온몸에 휘발유 끼얹고 죽은 혼백들
천지사방 잠재우는 눈발로 내려온다
울끈불끈 솟은 산맥도 덮어주고
울퉁불퉁 이어지는 언덕도 덮어주며
우리 사는 세상 마침표 덮는다
아름다운 시트로 한 세상 덮는다
어화 넘차 어화 넘차
쓸쓸한 우리 생애 호방산 덮힌다
07.12.30/밤 11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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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 돋아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 돋아
하늘도 파랗고
들도 산도 파란 오월에
일천간장 각뜨는 수백 수천 무덤 앞에
아들 제상 차려놓고 어머니 웁네다
딸 제상 차려놓고 어머니 웁네다
소주 한 병
새우깡 한 봉지
쿨피스 한 잔 사과 한 알
붉은 카네이션 한 송이 꽂아놓고
넋나가고 혼나간 어머니 웁네다
아제, 한잔합시다...... 음복하는 어머니
날 잡아잡숴, 주저앉아 웁네다
인간의 삼 넋 중에
한 넋만 없어도
깜부기꽃 되는 법 아닙니까
광주항쟁 난리통에
넋나간 우리 어머니 신병은
병원 가도 못 찾고
의원 가도 못 찾고
먹던 밥상 물린 지 팔년 세월
자던 잠 멀리한 지 팔년 밤낮
그리운 건 오매불망 우리 애기 그린 얼굴
하늘에 별 떴다
우리 애기 설움 떴다
하늘에 달 떴다
우리 애기 넉 떴다
무덤 위에 흘린 눈물
강이 되고 바다 되어
굽이굽이 돌아가는 저 바닷물도
썰물 나면 밀려나고
들물 나면 밀여오건만
광주항쟁 난리통에
홀연히 집 나간 우리 애기들
밀물에도 썰물에도 감감무소식입니다
07.12.30/밤 11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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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한번 가서 오지 않는 우리 애기
보고잖거 보고잖거
우리 애기 보고잖거
얼굴이나 한번만
봤으면 원 없겠네
영정 위에 후두두둑 쏟아진 눈물
불이 되고 칼이 된 눈물은
어머니 태아 주신 하늘로 올라가
궁핍한 목숨들 잠든 밤이면
사무치는 이 강산 황토흙 적시듯
이월 찬비 내린다, 너구나
삼월 단비 내린다, 너구나
사월 꽃비 내린다, 너구나
오월 큰비 내린다, 너구나
유월 장마비 내린다, 너구나
칠월 작달비 내린다, 너구나
팔월 장대비 내린다, 너구나
구월 소낙비 내린다, 너구나
시월 늦비 내린다, 너구나
동짓달 겨울비 내린다, 너구나
섣달 눈비 내린다, 너구나
맨발로 달려나가
온몸에 맞아보건만
한번 가서 오지 않는 우리 애기
봄비에도 가을비에도 살아나지 않으니
철아 이놈아 에미가 왔다
네가 나를 찾아와야제
내가 너를 찾아오다니
철아 이놈아
에미 가슴에 무덤 만들어놓고
새가 되어 날아갔냐
물이 되어 흘러갔냐
아적에 밥 먹고 나간 자식아
눈이 오면 누가 쓸어줄까
비가 오면 누가 덮어줄까
좋은 것만 봐도 생각키고
궂은 것 만나도 생각키고
에미 제상 받아먹는
이 무정한 놈아!
목소리 한번만 들었으면 좋겄네
07.12.31/밤 12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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