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다시 필사 시

<시> 해감 / 설현민(2021 영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 23.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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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감

 

  설현민

 

 

  새벽 물때다 사촌들과 바지락을 캐러 간다 이모를 도와야 했다 엄마, 엄마, 나는 한 번도 이모를 본 적 없는데요 가족이잖니 단숨에 알아차릴 거다

 

  모래사장은 구덩이로 가득하다

  저 안에서 움직이는 게 보이니 저기 너희 이모가 있잖아 움직이는 게 너무 많을 걸요 네 이모처럼 움직이는 것은 하나뿐이란다

  등을 돌려 앉은 엄마는 쇠갈쾡이로 발 밑을 푹푹 퍼올린다

 

  나는 양동이를 끌어안고 움푹한 바닥을 들여다본다

  모래 속에는 모래가 들어 있다

 

  어린 사촌들은 껍데기를 손에 쥐고 땅을 헤집는다 또 다른 껍데기를 주워 자랑한다

 

  바지락을 얼마나 더 캐야 하나요 노인들의 배를 채우기에는 아직 모자라구나

  이모는 왜 그렇게 깊이 파들어 가죠 깊은 곳엔 먹을 것이 없잖아요

  네가 그렇게 태어났지 모래를 툭툭 털고 너를 꺼냈단다

 

  바지락이 쌓여간다

  나는 그것을 씻어 다른 양동이에 옴겨 담는다 빈 껍질을 골라낸다

  아이들은 조개껍데기를 묻어 성호를 긋고

 

  너는 어쩌면 이렇게도 다 커버렸구나 이젠 무엇도 몰라보겠구나

 

  검은 천으로 양동이를 덮는다

  내 입안에 서걱거리는 것이 들어있다

  나는 이모가 엄마를 닮았다고 말했다 이모는 엄마보다 많이 늙어 있었다고

 

  저기 모래를 뱉고 있는 것이 있다

  나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

 

 

 

<2021 영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2021년 1월 23일 13시 40분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