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다시 필사 시

<시>돌의 찬 손이 이마를 짚어주다 /백향옥(2021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 2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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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의 찬 손이 이마를 짚어주다

 

백향옥

 

 

부풀어 오르는 흙이 좋아 맨발로 숲을 걸었다

바닷물에 발을 씻다가 만난 돌은

손바닥에 꼭 맞는 매끄러운 초승달 모양

 

열병을 앓을 때 이마를 짚어주던 당신의 찬 손

분주하게 손을 닦던 앞치마에 묻어 온 불 냄새, 바람 냄새, 놀란 목소리

곁에 앉아 날뛰던 맥을 지그시 눌러 식혀주던 손길 같은

 

차가운 돌을 쥐고 있으면 들뜬 열이 내려가고

멋대로 넘어가는 페이지를 눌러두기에 좋았는데

어느 날 도서관 대리석 바닥으로 떨어져 깨져버렸다

 

몸 깊은 곳에서 금이 가는 소리를 들었다

놓친 손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두 동강 난 돌을 잇대보았지만

깨진 돌은 하나가 될 수 없고

가슴에서 자라난 실금이 무섭게 살아났다

 

식었다 뜨거워지는 온도 차이가

돌 안쪽에서 금을 내고 있었던 걸 몰랐다

 

이제 그만 됐다고 따뜻해진 돌이 속삭였다

 

그날, 달빛 밝은 강물 속으로 걸어들어가 깨진 돌을 가만히 놓아주었다

달에게 돌려주었다

 

 

 

<2021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2021123일 오전 1139/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