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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고
황정현
극지의 순록은 우아한 뿔을 가졌다
거친 발굽으로 수만년을 걸어왔다
죽은 자식을 동토에 던지며 발길을 돌려야 했고
비틀 걸음으로 얼음산을 넘어야 했고
살점을 떼어 어린 자식의 배를 불려야 했고
뿔을 세워 침략자에 맞서야 했고
온몸을 쏟아 무리를 지켰다
죽어서도 흙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치열한 싸움에서
늘 이기고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당신은 무덤을 등에 지고 돌아왔다
무덤은 살고 당신을 죽었다
무덤 속에서 얼음이 자라고 있다
얼음은 흙을 밀어 올려 산이 될 것이다
얼음의 계절이 오면 순록은
바늘잎나무숲으로 순례를 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당신의 길이 보인다
<2021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2021년 1월 22일 20시 18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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