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다시 필사 시

<시>책등의 내재율 /엄세원(2021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 2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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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등의 내재율

 

엄세원

 

 

까치발로 서서 책 빼내다가

몇 권이 기우뚱 쏱아졌다

중력도 소통이라고 엎어진 책등이

시선을 붙들고 있다

 

반쯤 열린 창문으로 햇살이

배슥이 꽂혀와 반짝인다 정적을 가늠하며

되비추는 만화경 같은 긴 여운,

나는 잠시 일긋일긋 흔들린다

 

벽장에 가득 꽂힌 책 제목 어딘가에

나의 감정도 배정되었을까

곁눈질하다 빠져들었던 문장을 생각한다

감각이거나 괘락이거나 그날 가분에 따라

수십 번 읽어도 알 수 없는

나라는 책 한 권,

이 오후에 봉인된 것인지

추스르는 페이지마다 깊숙이 서려 있다

 

벽 이면을 온통 차지한 책등

그들만의 숨소리를 듣는다

어둠을 즐기는 안쪽 서늘한 밀착, 이즈음은

 

표지가 서로의 경계에서 샐기죽 기울 때

몸 안의 단어들이 압사되는 상상,

책갈피 속 한 송이 압화 같은 나는

허름하고 시린 과거이거나 목록이다

 

나는 쏟아진 책을 천천히 넘겨본다

 

벽은 참 출출한 비결祕訣이다

 

 

 

<2021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20211221949/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