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새재엔 관문이 네 개 있다 /김완수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 27.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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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새재엔 관문이 네 개 있다

 

김완수

 

 

문경 새재 세 관문을 바람처럼 지나간다

볕 드는 곳마다 나는 물박달나무 냄새

당신과의 기억에 쓸릴 때마다

울음이 회갈색으로 조각조각 벗겨져도

단단한 냄새가 발자국을 찍으며 앞서가면

나는 새가 허공에 흘린 소리 같은 바람이 된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봉우리들은

누군가에겐 통곡의 벽이었을 것이고

누군가에겐 사모(紗帽)의 신기루였을 것이다

땅에 발을 묻은 풀만 봐도 울컥하는 이라면

넘어서려는 마음은 흘려보내고

새처럼 길을 돌아내릴 줄 알아야 한다

산그늘이 젖무덤같이 봉긋봉긋해질 때

발부리에 차이던 생각들도 집을 찾는다

 

나는 아픔과 자기 연민의 사생아

나락에 떨어져 본 사람만이

가없는 길을 오르는 일의 덧없음을 안다

골바람을 배웅하고 문경으로 돌아설 즈음

퇴적된 표정에서 오래전의 얼굴이 돋아난다

나는 내 안에 또 하나의 관문을 만들며

어제가 남긴 길을 훌쩍 지나간다

이미 길을 잃고 찾은 길엔 이정표가 없어

돌아올 때는 세상에 없는 바람이 된다

 

 

내가 굽이굽이 지나온 시간은

이 고개에서 허물을 벗고 숨 돌리는데

마냥 오르려 하던 당신은 지금 안녕하신지

 

 

<2회 문경새재문학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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