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다시 필사 시

<시>끈 혹은 줄에 관한 단상 /지연구(2017 제17회 평사리문학상 수상작)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2. 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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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 혹은 줄에 관한 단상

 

지연구

 

 

택배로 부칠

상자를 묶을 포장끈이 모자라

끈을 이어 묶다가 짧은 끈을 바라보네

애초부터 가진 끈이 짧았던 아버지

당신 끈을 내게 이어주려 무진 애를 쓰셨지

국민학교 사 년, 남의 집 더부살이

그 끈에 묶인 매듭이

모난 돌멩이처럼 늘 가슴에 배겨 아팠네

월요일 아침 애국 조회시간

줄서기가 삐뚤어져 얻어맞던 선생님의 회초리는

좋은 줄을 가져야 한다는 가르침 같았네

친구들의 질기고 화려한 나일론 줄에

새끼줄 같은 나의 끈을 슬쩍 묶어보았지만

신분이 다른 줄은 금새 풀어지고 말았네

시화공단, 꽤나 큰 포장끈 공장에서

삼십여 년 끈을 만지며 살았지만

늘어진 삶의 끈을 팽팽하게 당겨주지 못했네

너무나 느슨하고 헝클어져버려서

줄에 걸려 넘어진 생활이 동강동강 끊어지고 말았네

토막난 생활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다시 이을 수는 없었네

이어 묶은 끈으로 상자를 포장하고

매듭지어진 곳에 남은 끈을 잘라버리네

이어지지 않는 끈을

아버지도 그만 싹둑 잘라버리고 짧은 숨을 놓으셨지

 

포장 끝낸 상자를 우체국에 맡기고 돌아오는 거리

썩은 동아줄에 매달렸다 떨어지며 울부짖는

호랑이 울음소리 여기저기 들리네

달님과 햇님이 된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간간이 들여오는 듯하네

 

 

<2017 17회 평사리문학상 수상작>

202121일 오후 1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