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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족
홍일표
해변에서 생물연대를 알 수 없는 나비를 주웠다.
지구 밖 어느 행성에서 날아온 쓸쓸한 연애의 화석인지
나비는 날개를 접고 물결무늬로 숨 쉬고 있었다
수 세기 거쳐 진화한 한 잎의 사랑이거나 결별인 것
공중을 날아다녀 억을 잊은 듯
나비는 모래 위를 굴러다니고 바닷물에 온몸을 적시기도 한다
아이들은 그것이 나비인 줄도 모르고 하나둘 주머니에 넣는다
이렇게 무거운 나비도 있나요?
바람이 놓쳐버린 저음의 멜로디
이미 허공을 다 읽고 내려온 어느 외로운 영혼의 밀서인지도 모른다
공중을 버리고 내려오는 동안 한없이 무거워진 생각
티스푼 같은 나비의 두 날개를 펴본다 날개가 전부인 고독의 구조가 단단하다
찢어지지도 접히지도 않는
바닷속을 날아다니던 나비
―시집『밀서』(문예중앙, 2015)
2021년 2월 1일 오전 10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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