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이야기
권오삼
1
지금부터 50년 전 전라남도 해남 땅
고구마 부족 중에 한 영웅이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밤고구마'이다.
본래 이름은 고구마 부족답게 그냥 고구마였으나
언제부터인지 '밤'과 손을 잡고는
'밤고구마'라며 스스로 고구마왕이라 했다.
그러자 같은 해남 땅에서 태어난
한 고구마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지
"뭐시라, 지가 고구마왕이라고, 흥!"
얼른 '호박'과 힘을 합치곤
내가 진짜 고구마왕이랑께! 하며 밤고구마와 맞서니
이가 바로 '호박고구마'이다.
그렇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하며
또 한 고구마가 둘의 흉내를 내어
'꿀'과 힘을 합치고는
난 '꿀고구마'여! 하며 자기가 진짜 고구마왕이라고 했다.
이로부터 우리나라의 고구마는
세 고구마가 서로 다투는 삼국 시대가 되었고
그들은 자기가 한국의 고구마들을 통일하겠다며
재래시장이나 마트에서 맹렬하게 전쟁을 벌였다.
2
때는 지금부터 2년 전 가을 어느 날이었다.
수요일마다 열리는 우리 아파트 수요 장터 날,
채소가게에 돌연 한 고구마가 불쑥 나타났으니
바로 '아이스크림고구마'였다.
그는 자기가 인공지능 시대의 새로운 고구마라며
스스로 왕 중의 왕이라 했다.
그 '아이스크림고구마'가 세 고구마를 향해
먼저 기습공격을 했다.
"입에서 살살 녹음, 한 무더기에 만 원!"
"머, 살살 녹는다고? 한 무더기에 만 원이라고?"
밤, 호박, 꿀고구마가 어, 할 사이도 없이
살살 녹는다는 말에 살살 녹은 엄마들이
아이스크림고구마만 우르르 사 갔다.
셋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 하고 참패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아이스크림고구마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뻥을 너무 쳤거나 뒤따르는 부하들이 없었던 모양이다.
다시 밤, 호박 꿀고구마의 삼국 시대가 되었다.
3
이때로부터 1년 뒤
충청남도 계룡산에서 100년 동안 도를 닦았다는
수염이 댓 발이나 되는 허연 도인이 나타나
"셋 중 누구도 한국의 고구마 부족을
통일하기는 매우, 아주, 힘들 것이니라." 했다.
하지만 그건 아무도 모른다.
또 어떤 고구마가 고구마 부족을 통일하겠다며
아이스크림고구마처럼 불쑥 나타날지,
모든 건 고구마를 연구하는 농학 박사에게 달렸다.
진짜로 입에서 살살 녹는 아이스크림고구마가 나타나
고구마 부족을 통일한다면 더 바랄 게 없지만,
아마도 앞으로 한 100년 동안은 어려울 것 같다.
ㅡ고구마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남한과 북한은 언제 힘을 합쳐 하나가 되지?
언제 아시아의 호랑이가 되지?
ㅡ『동시마중』 (2020년 9.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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