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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암각화
심은섭
여기는 제작연대 미상의 카페입니다
신분제도가 없어 회원이 꽤나 됩니다 월회비는 한 덩어리의 구름이고, 가입비는 한 접시 바람일 뿐, 누구나 ID가 ‘원시인’인것은 설립자의 유언으로 양해 바랍니다
절벽에 새겨진 호랑이가 암벽등반대회 참가 중이라는 ‘댓글’을 달지 마세요 이미 정신이 실종된 빈 가죽일 뿐입니다 방명록엔 누구든 가을빛 눈물 한 방울쯤 떨어뜨릴 수는 있어도, 암벽의 흰수염고래 가죽을 ‘복사’해서는 안됩니다 들소의 아마포 찢는 듯한 울음소리는 한 움쿰만 퍼가세요 눈을 감지 못한 물개가죽을 다른 곳으로 ‘붙여넣기’해서도 곤란합니다 바다거북이가 궁서체로 쓴 편지는 지금도 전송 중이므로 다른 이름으로 ‘저장’을 불허합니다 그 까닭은 그들의 영혼을 비는 주술사의 제의가 아직도 진행 중인 까닭입니다
카페 ‘자유게시판’에 사냥교본을 올리거나, 사냥도구 사용법이 기록된 행간에 붉은 밑줄을 긋지 마세요 어깨가 넓은 바람이 밑줄을 긋다 회원 탈퇴 권유를 받았습니다
여기는 싱싱한 슬픈 왕국의 카페입니다
―시집『Y셔츠 두 번째 단추를 끼울 때』(상상인, 2021)
2021년 4월 13일 19시 33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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