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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추어탕
류미야
안희동 삼거리를 소롯이 꺾어 들면
미끄러진 세월 같은 모퉁이 길 옆으로
한 백 년 기다린 듯한
처마 낮은 그 집
발목 푹푹 빠지는 흙탕길을 헤치고
자꾸만 비꾸러지는 진 하루를 부리면
한소금 뚝배기 돌도 어깨를 추어주던.
오래 전 나 거기서 힘을 얻어 오곤 했네
파닥이는 꼬리로 어둠을 밀뜨리며
서리 낀 가을 저녁을 추어처럼 돌아오던 곳
이제는 있는지 모를 투박한 간판이나
주인은 바뀌어도 내겐 옛집 사랑舍廊 같은
되짚어 백년손님처럼 굽이굽이 닿고픈 곳
다시 한 백 년 쯤 더 그곳을 지키다가
불 꺼진 가랑잎 같은 누군가 찾아들어
뜨겁게 지펴졌으면 싶은
그곳, 백년추어탕
ㅡ시집『아름다운 것들은 왜 늦게 도착하는지』(서울셀렉션,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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