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매미 /오성인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7. 1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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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오성인

 

 

폭염으로 끓어오르는 한여름

길을 걷고 있었다

 

보도블록과 아스팔트 사이 경계석이

만든 그늘에 매미 한 마리가 태아처럼

웅크린 채 죽어있었다

 

무엇이 그리 급했던 걸까, 생애

팔 할을 음지에서 보내고 온몸에 볕이

번지기도 전에 그늘로 돌아간 그는

 

곧게 뻗은 입이 선비의 갓끈과 같고

이슬과 수액만 먹으므로 맑고

해를 주지 않아 염치가 있고

집을 갖지 않으며 오고 감이 분명해

오덕을 갖췄다던가

 

도시에서는 낮밤 가리지 않고

소음과 불빛의 기세보다 맹렬히

울어야만 겨우 계절을 버틴다는데

 

오직, 그는 유일한 자산이자

목숨이나 다를 바 없는 그늘만으로

폭염보다 요란하게 울었을 것이다

 

고단했을 몸을 근처 풀숲에 놓아주었다

그늘이 된 그가 그늘을 베고 눕는다

 

모든 그늘은 누군가 울다 간 흔적

 

내 안에도 그늘이 자라고 있었다

 

 

계간시와 문화(2018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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