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가래 굴리기 /임채우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0. 25.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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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래 굴리기

 

임채우

 

 

가래 한 쌍 손에 쥐고 굴려 보지 않으실래요?

요렇게 소리 안 나게 말입니다

손아귀에 꽉 차서 잘 구르지 않는다고요?

그렇다고 뽀드득뽀드득 이빨가는 소리를 내거나

거칠게 빨래판 치대는 소리가 나면 곤란해요

낙엽 밟는 소리다든가

사각사각 눈 내리는 소리로 굴리다 보면

딱딱한 가래가 점점 말랑해지며

어느덧 사물의 경계가 흐물흐물 녹아내리지요

우주 안의 두 구체가 자전과 공전을 하면서

인력이니 중력이니 뭐, 그런 것들이 사라져요

말이 그렇지, 망치로도 깨지지 않는 가래가

몇 번 굴렸다고 말랑말랑해지냐고요?

글쎄,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다니까요

손바닥의 감촉과

비비며 나는 소리와

떠오르는 이미지가 한데 섞여

허전하다 싶으면 비로소 느슨해요

손안의 가래가 내 몸의 일부가 되지요

한번 해 보지 않으실래요?

 

 

 

―시집『설문』)우리詩움,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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