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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한 계절의 빨강
김밝은
올가을엔 동쪽에서 오는 사람을 꽉 잡어!
틀림없이 귀인일 테니…
나의 훗날쯤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심술궂은 사월의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초년고생은 심했구만
이젠 마음만 먹으면 다할 수 있겠어
(어딜 가든 똑같은 희망고문이지)
사과에 들여야 할 붉은 향기를 품기 위해
마음속 적심(摘心)은 쉽지 않아서 다만
아직 삐딱한 계절이 덮인 흙을 발로 꾹꾹 눌러주었다
빨강을 좀 더 주세요
아니, 그냥 빨강으로 나를 덮어줄래요
어둠처럼 고이는 잡념의 시간을 내 안에서 파내고
점괘에 맞추듯 붉은색을 들이부어야 하나
꼼꼼한 솜씨로 그려 넣은 부적의 붉은 샛길은
어디로 가닿는 절박한 소식인지
붉은 속옷을 입으라니까,
아브라카다브라!
ㅡ『서정과현실』(2021, 하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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