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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41) / 통렬한 문명비판 - 오세영의 ‘지진’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0. 30.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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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41) / 통렬한 문명비판 - 오세영의 ‘지진’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41) / 통렬한 문명비판 - 오세영의 ‘지진’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41) / 통렬한 문명비판 - 오세영의 ‘지진’

 

지진

오세영

 

지구는 습진으로 피부가 짓물렀다.
농경이다 개발이다 파헤치는 산과 들
가려움 참을 수 없어 지친 몸을 뒤튼다. 

따끔따끔 쏘는 빈대, 사정없이 무는 벼룩, 
혈관에서 뽑는 석유, 살 속에서 캐는 석탄, 
괴로움 참을 수 없어 팔다리를 비튼다. 

ㅡ『너와 나 한 생이 또한 이와 같지 않더냐』(태학사, 2006)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41) / 통렬한 문명비판 - 오세영의 ‘지진’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해설>

오세영 시인의 시조집을 보면 분명히 정통파 투수의 투구인데 새롭게 개발한 투구 폼인지라 정형의 틀 안에 갇혀 있지 않다. 무진장 쾌속이고 휘어져 들어온다. 이 시조도 양장시조의 자수를 철저히 지키고 있다. 그런데 내용은 통렬한 문명비판이다. 

지구 곳곳이 지진과 쓰나미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구의 몸살에 우리 인간은 집을 잃고 목숨을 잃는다. 이제 지진은 먼 나라의 불상사가 아니다. 포항과 경주 일대에 꽤 많은 피해를 주었다. 

인류가 수천 년 농사를 짓는 동안 들판이 논이 되고 산야가 밭이 되었다. 바다를 매립해 농토로 만들기도 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석탄을 동이 날 정도로 캐어 연료로 썼다. 석유조차도 금세기 말에는 동이 날 것이다. 시인은 지진을 천재지변으로 보지 않는다. 인간이 산과 들을 마구 파헤쳐 지구의 피부는 짓물렀다. 지구의 피를 뽑고 살을 도려냈다. 지구는 괴로움을 참을 수 없어 팔다리를 비틀었고, 그것이 지진이라는 상상을 해보았다. 석유와 석탄을 뽑은 행위를 지구가 겪는 빈대와 벼룩의 고통으로 표현한 것이 의미심장하다. (나는 사실 빈대와 벼룩이 주는 고통을 모르고 자랐지만 돌아가신 할머니는 종종 그놈들이 준 고통에 대해 말씀하셨다.) 문명이 인간에게 편리를 가져다주었지만 결국은 인간을 해칠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시조작품이다.

출처 : 뉴스페이퍼(http://www.news-pap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