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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40) / 아픈 가족사 - 이근배의 ‘깃발’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0. 30.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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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40) / 아픈 가족사 - 이근배의 ‘깃발’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40) / 아픈 가족사 - 이근배의 ‘깃발’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40) / 아픈 가족사 - 이근배의 ‘깃발’

 

깃발

이근배

 

아버지는 깃발을 숨기고 사셨다 
내가 그 깃발을 처음 본 것은 
국민학교 5학년 때였다 
해방 전부터 시작된 감옥살이에 
 몸이 상할 대로 상한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석방 노력과 설득에 
겨우 마음을 돌려 
농사를 짓겠다고 나선 지 
한 해도 못 되어 육이오가 일어났다 
―너 재집이 하고 
   명룡이네 좀 다녀 오거라    
인민군이 어디쯤 내려왔는지 
아직 전쟁바람도 안 불고 
태극기가 우리나라 깃발이던 어느 날 
이웃집 재집이와 나는 
집 모퉁이 콩깍지동 속에서 꺼내주는 
종이 깃발을 품 속에 안고 돌아왔다 
운동회 날 하늘을 덮던 
만국기들 속에서는 보지 못했던 그 깃발 
아버지는 언제부터 무엇에 쓰시려고 
숨겨두고 계셨던 것일까 
그 깃발의 세상이 오자 
아버지는 온양으로 떠나셨고 
오늘토록 돌아오시지 않는다
어머니와 우리 세 남매의 
행복을 앗아간 깃발 하나 
오래도록 내 안에서 
입 다문 슬픔으로 펄럭이고. 

-『시와 사람』(2004. 봄)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40) / 아픈 가족사 - 이근배의 ‘깃발’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해설>
  
평화통일을 주장한다고 간첩으로 몰렸던 시대였다면 결코 발표할 수 없는 시다. “인공 때 집을 나간 뒤 생사를 모르는 애비”(「할아버지께 올리는 글월」)라는 시인의 말은 반공법이 살아있던 시대에 일가가 어떻게 살았는지 웅변해주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독립투사로 여러 차례 옥고를 치렀던 시인의 부친은 광복이 되자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로 분개한다. 1948년, 미군정의 도움을 받아 남한 단독정부를 세운 이승만 정권은 권력 장악을 위해 친일파를 처벌하기는커녕 고스란히 등용하였고, 이것은 조금이라도 바른 식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부친의 공산당 투신은 ‘공산주의’라는 사상에 경도된 면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잘못된 정치현실에 대한 분노가 더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당진에서 농사를 지으며 몸을 추스르고 있던 부친은 한국전 발발 후 인민군이 밀고 내려와 ‘인공’ 치하가 되자 숨겨둔 인공기를 찾아 들고는 온양으로 간 뒤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인민군에 자진 입대했는지 월북했는지, 언제 어디서 돌아가셨는지 생사 여부도 알 수 없는 아버지는 어머니와 세 자식에게 엄청난 형벌을 내렸다. 자신은 신념에 따라 결단을 내렸겠지만 남은 가족은 형극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특히 어머니는 말 한마디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벙어리의 나날을 살아왔을 것이다. 시인은 분단의 세월 내내 숨겨온 사실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가족사의 상처를 봉합한다. 애증의 50년 세월을 보낸 지금, 증오는 접고 사랑과 존경을 담아 아버지를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출처 : 뉴스페이퍼(http://www.news-pap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