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이호우·이영도시조문학상 수상작품
코뚜레 들녘
길은 얼떨결에 반환점 휘돌아갔어
뉘 모를 아쉬움만 저만치 나앉아서
골똘히 반생을 보네 술 사발 기울이네
FTA 나발 불지만 곧들을 농심은 없어
걷힐라면 도로 안개 겹겹 그 어질 머리
들녘은 코뚜레 황소냐 그저 묵묵 끌고 끄는
기를 써도 겹던 날들 부릴 수도 없던 날들
돌아보면 아득도 해라 가슴 치는 이 그리움
여인아, 해동解冬의 들녘으로 우리는 함께 가자
-수상 시조집 『해동의 들녘』중에서
♣ 2021, 이호우·이영도시조문학상 수상소감 : 강문신
오늘도 일꾼들을 차에 태우고 농장으로 향합니다. 농장에 도착하면 나무들이 묵묵히 반겨줍니다. 이리저리 살펴보고 돌아보며 다듬고 북돋웁니다. 와중에 품종갱신을 위하여 애지중지 키우던 귤나무들을 내 손으로 베어낼 때가 있습니다. 그 애원의 눈망울들을 짐짓 외면하고 눈물을 머금고 살뚝 잘라냅니다. ‘읍참마속泣斬馬謖’ 이라는 성어를 제목으로 저의 이런 일상은 한 편의 시조가 되기도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더러 홀가분할 때가 있지요. 이제 아른대는 나무들이 없으니 편히 좀 쉬자며 술잔을 기울이다보면 홀연 스치는 생각이 있습니다. “아! 나는 혹시 귤나무가 아닐까? 잘려야할 내향지는 아닐까?” 깊은 생각에 빠져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헛가지」라는 시편이 또 변명처럼 나왔습니다. 그저 투박한 농꾼의 길, 황소의 보법으로 터덜터덜 가고 있는 코뚜레 들녘에 이호우‧이영도 문학상이 주어지다니 아직도 놀랍기만 합니다.
먼 제주도에 살면서 홀로 그리워만 하고 있던 이호우, 이영도 선생님의 고장 청도! 그 곳에서 시상되는 이 시조문학상은 시조시인 뿐만 아니라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하는 상입니다. 30년 동안의 그 영예로운 수상자들 아래 제 이름을 올릴 수 있음이 너무나 영광스럽습니다. 결코 오늘을 잊지 않고 정진하겠습니다. 먼저 청도군에 경의를 표합니다. 이호우·이영도문학기념회 관계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예심위원님, 심사위원님 모두 고맙습니다.
그 옛날 신춘문예 당선 이후, 시에의 은혜를 갚아야한다는 마음을 가진 지는 꽤 오래됩니다. 그 일환으로 개설한 석파시선암石播詩禪庵 석파시선재齋 또한 석파시선암철쭉제를 통해서 시조 발전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도록 노력하며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문신 시인)
〈약력〉
90년 서울신문, 9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한국문인협회 서귀포지부 초대 지부장
시집: 당신은 "서귀포..."라고 부르십시오 외 3권
제1회 서귀포예술인상, 시조시학상, 한국시조시인협회상,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상, 조운문학상 수상.
♣ 2021, 이호우·이영도시조문학상 심사평
1991년 이호우시조문학상으로부터 2012년 이호우․ 이영도시조문학상으로 통합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조단의 기라성 같은 시인을 선정하여 창작열을 북돋우고 그 시업에 칭송과 격려를 꾸준히 해온 이호우․ 이영도 문학기념회의 수고와 정성에 깊은 경의와 감사를 드린다. 또한 청도군 군수님과 이를 위해 수고해 오신 관계자님께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
이호우․ 이영도시인의 시정신을 기릴 수 있는 시인으로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시조시인은 일곱 분이었다. 한결같이 각고의 정신으로 치열하게 임해온 작품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강문신 시조집 『해동의 들녘』을 수상 작품집으로 선정하고 「코뚜레 들녘」을 당선작품으로 올리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농사짓는 현장에서의 체험을 녹여낸 작품이라 이미지가 명징하고 건실한 삶이 미덥다. 사실 투박한 손길과 뜨거운 의지로 그려낸 작품은 흔치 않다.
강문신 시인은 토속적이고 향토적인 소재로 진솔하고 뜨겁게 격조와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도 농사 관련문제를 깊이 고민하는 등 여느 작품집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생생한 삶을 그려내고 있다. 심고 가꾸는 들녘에서의 땀과 고통과 때로는 좌절감이 전율처럼 흘러 독자로 하여금 크게 공감을 일으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꿋꿋이 견뎌내는 농심의 희망과 의지를 시조로 담아낸 『해동의 들녘』 이 시대의 삶이요, 노래요, 희망인 이 작품집을 대상작으로 기꺼이 선정한다. 땀과 열정의 생생한 시조집 『해동의 들녘』과 강문신 시인께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축하를 드린다.
심사위원 한분순(위원장), 노중석, 전연희(글)
예심위원 ; 박명숙, 정경화, 이승현, 심석정, 김덕남
♣ 2021, 이호우·이영도시조문학상 남자 신인상 수상작품 / 이정재
두룸박, 드레박, 두레박
손사래 거두지 못하는 벽이 있다면
저마다 건너지 못하는 강을 만나면
우물가 찾아오시어 두드려요 두룸박*
장마 진 여름날에 입씨름하다 지치면
마음속 우물가에 드레박*을 툭 던져
내면이 바닥 치는 소리 들어봐요 두 귀로
심금이 요동치고 눈물샘 흔들어야
두레박 의지하여 밑바닥에 닿아야
가슴 뻥 뚫리잖아요 속내 깊은 물맛에
* 두룸박 : 충북, 전북 방언.
* 드레박 : 강원지역 방언.
-수상 시조집 『지구대 일기』중에서
♣ 이호우·이영도시조문학상 남자 신인상 수상소감 - 이정재
길목에 서 있습니다. 『꽃 풍등』을 타고 하늘호수 은하로 길을 떠난 어머니, 누님, 형님...., 그리운 이름들이 밤하늘의 별님들로 반짝이며 빛납니다.
곧 다가올 퇴직을 앞두고 지방의 변두리 대학에서 자격증을 공부하는 시월의 햇살 맑은 아침 녘, 두 갈래 길목에서 반가운 수상 소식을 받았습니다. 무언가 하나가 떠나고 나면 위로를 하듯 또 다른 별님들이 찾아옵니다.
사진 속에서만 기억하는 어머니, 시조 문단으로 이끌어 주신 원로 은사님, 햇병아리 시인에게까지 박수와 용기를 보내준 큰 누님 같았던 여류 시인님(지난 유월, 초여름날 소천), 올바른 시인이 되라며 한결같은 격려와 덕담을 보내준 「복수초꽃」 친구 아버님, 아낌없는 지도와 편달로 가르치고 보살펴 주신 멘토 선생님, 그리고 변함없는 지지와 성원을 보내준 부산시조시인협회와 문우님들..., 귀하고 소중한 분 모두가 저에게는 별님입니다.
부족한 작품을 선정하여 “아름다운 우리 시조”라는 세상으로 인도하여 주신 심사위원님과 이러한 성찬을 마련해 주신 이호우·이영도 문학기념회 여러 선생님들도 저에게 찾아온 감사한 별님입니다.
하류에 휩쓸리는 온갖 인간군상이 교차하는 지구대에서, 경찰이라는 공무를 담임하여 도저히 시조를 쓸 형편과 입장이 못 되는 척박하고 황량한 대지에서 시조를 씁니다. 곤란과 결핍은 숭고한 시조 창작의 원심이요, 근력이라 믿으며 시조를 쓰고 있습니다.
현실과 문학이라는 두 갈래 길목에서 머물거나 부딪힐 때마다 손을 잡아주며 이끌어 준 고마운 별님들이 있어, ‘지금 여기’가 있고 오늘의 이 영광스러움도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 별님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더욱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현실과 문학이라는 저의 두 갈래 길이 시조로 인해 하나가 되길 소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약력〉
- 2015년 《문장21》 등단
- 한국시조시인협회, 오늘의 시조 시인회의, 부산시조시인협회,
부산가톨릭문인협회, 금정구문인협회, 한국동요사랑회 회원
- 현, 부산금정경찰서 재직 중
- 《볍씨》, 《연대, 단시조》 동인
- 시조집 『꽃 풍등』 · 『지구대 일기』
(이정재 시인 )
♣ 2021, 이호우·이영도시조문학상 여자 신인상 수상작품 / 우정숙
늙은 가스렌지
처음엔 파란 불꽃 그을음도 없었다
손끝 살짝 닿으면 찌지직 스파크 일고
두 눈빛 알전구처럼 총명하고 맑았다
어느새 미간의 주름 까맣게 새긴 저녁
옆구리 툭툭 치며 어제 일도 기억 못 해
또 하루 거꾸로 더듬다 되물어 다그친다
강도 높던 점화력도 스르르 기가 죽고
깜박깜박 멀어지는 충전의 시간 위로
무덤덤 말수는 줄고 정물로나 앉았다
-수상 작품집 『 문득 』 중에서
♣ 이호우·이영도시조문학상 여자 신인상 수상소감 - 우정숙
문득, 그날이 떠올랐습니다. 2010년 이호우·이영도 문학행사에 처음으로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전국에서 유명하신 시조시인님들이 다 모이신 자리라고 들었습니다. 개화란 책을 받아 안고 읽으면서 시인님들이 부러웠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제 시조의 길은 그때부터 시작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가난이 밥이던 시절 “감꽃만 줍던 아이가 몰래 솥을 열어 보”던 …. 저 또한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배움이 짧은 제가 뜻밖의 인연으로 우리 문학의 종가인 시조를 만났던 것입니다.
“시조는 지식으로 쓰는 게 아니다”란 스승님의 말씀, 늘 감사히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그 말씀에 힘입어 늦은 나이에 밤마다 움막인지 대궐인지 도면도 하나 없이 부수고 쌓으며 청기와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제 삶의 맨 앞자리에 시조란 이름을 공손히 앉혔습니다.
꿈같은 현실 앞에 이 무거운 짐을 감당해 나갈 수 있을지 두 다리가 휘청거립니다. 낮은 보폭 더딘 발걸음 조심스레 옮기며 단아하고 기품 있는 정운 이영도선생님의 시 정신을 이어받아 더욱 정진할 것을 다짐해봅니다.
부족한 저에게 분에 넘치는 이 영광을 내려주시고, 뜻깊은 행사를 주관해 주신 이호우·이영도 문학 기념회와 청도군 관계자 분들,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인사 올립니다. 그리고 늘 옆에서 격려와 긍정의 힘을 불어넣어 주며 버팀목이 되어준 남편과 가족에게도 고마움 전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우정숙 시인 )
〈약력〉
경북 의성 출생
2013, 대구시조 공모전 장원
2014, 오누이시조 신인상
2014, ≪시조21≫ 신인상 등단
시조집『 너도 꽃』『문득,』
국제시조협회, 대구시조,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 2021, 이호우·이영도시조문학상 신인상 심사평
-남자 신인상 부분
최근 1년 사이 발간된 시조집을 두고 신인상을 뽑는 만큼 어려움이 따랐으나 완성도보다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과 패기에 무게를 두기로 하였다.
일선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이정재의『지구대 일기』는 사물을 보는 다양한 시각, 활달한 필치가 돋보였다. 작품으로는 「드룸박, 드레박, 두레박」을 선정했다.
드룸박, 드레박은 두레박의 지역 탯말로 ‘내면이 바닥 치는 소리’를 들으려면 ‘심금이 요동치고 눈물샘 흔들어야’ ‘속내 깊은 물맛’을 볼 수 있다는 시인의 모습이 진지하다 못해 경건하기까지 하다. 평생을 경찰관으로 임무를 다해 온 그의 경력으로 보아 앞으로의 시조사랑이 더욱 기대되는 것은 그의 진솔함과 성실함에서 기인한다. 「지구대 일기』가 경찰관의 성실한 임무와 자세에서 나왔다면 제복을 벗은 후의 자유로움과 새로운 일들을 통한 창작활동이 기대된다.
-여자 신인상 부분
선고를 통해 올라온 작품들은 현대시조의 다양성과 개성이 두드러졌다. 좋은 작품들이 많아 선정에 고심했지만 한편으로 매우 고무적이었다.
우정숙 시인의 『문득,』을 수상집으로 선정하고 「늙은 가스렌지」를 대표작품으로 고르는데 의견을 모았다.
관념을 벗어나 생활에 밀착된 눈과 마음으로 창작된 시조는 힘이 있고 감동을 주게 마련이다. 시조집『문득,』전반에 흐르는 진솔함과 따뜻함은 그런 힘을 가진 작품집이다. 선정된「늙은 가스렌지」는 인생을 투사한 작품으로 뒷방으로 나앉은 늙은 가스렌지는 노쇠한 현대인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동정적이거나 비관적이지 않다. 자연과 인생의 순환과 순리를 담담한 눈으로 그려내고 있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우정숙 시인의 힘이다. 기교나 말재주를 배제하고 직․ 간접 체험을 여과하고 육화하는 그의 시가 미덥다. 시대정신과 따스한 눈으로 그린 작품을 더욱 기대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두 분 모두 축하드리며 시조발전에 큰 역할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 한분순(위원장), 노중석, 전연희(글)
예심위원 : 박명숙, 정경화, 이승현, 심석정, 김덕남
□ 시상식
-일시 : 2021년 11월 12일 오후 4시 30분
-장소 : 청도 신화랑풍류마을 대강당
[출처] 2021, 청도군 이호우. 이영도 시조문학상 수상자 발표|작성자 시조21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 > 우리 말♠문학 자료♠작가 대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46) / 인천의 옛 모습 - 정경해의 ‘인천 43’ (0) | 2021.11.05 |
---|---|
2021, 오누이시조신인상 당선작 발표 /김진옥 목련 외 1편 (0) | 2021.11.05 |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43) / 꿈과 전설 - 김근의 ‘江, 꿈’ (0) | 2021.11.02 |
육십령 아래 가서 또다시 살어리랏다/ 이승하(시인ㆍ중앙대 교수)박일만 시집 -『살어리랏다』 (0) | 2021.11.01 |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42) /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 한원섭의 ‘구두닦이 아저씨’ (0) | 2021.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