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51) / 눈물겨운 투병기 - 배우식의 '목숨은 외롭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51) / 눈물겨운 투병기 - 배우식의 '목숨은 외롭다'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51) / 눈물겨운 투병기 - 배우식의 '목숨은 외롭다'
목숨은 외롭다
배우식
혓바닥이, 불에 탄 돌덩어리 같다
뇌수술로 폐쇄된 콧구멍,
혓바닥이 혼자서 바삭바삭
부서질 것 같은 숨을 삼킨다
불에 녹아 오그라든 비닐봉지 같은
목구멍이 오그라든 숨을 삼킨다
이렇게 코가 막혀 뚱뚱 부은
목구멍으로 숨을 쉬는 것은
죽음 속에서 길을 잃은 것보다도
더 아프고 더 외롭다
중환자실에서 간신히, 간신히 삼키는
목숨이 온몸을 태운다
바싹 탄 입 속에 섬처럼 떠 있는
검은 혓바닥으로 죽음이 달려든다
죽음이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달려든다
죽음이 끌고 가는 검게 탄 목숨 뒤를
눈동자 둘이 따라간다
울지도 못하고
죽음아 서둘지 좀 마라, 라는 말이
눈동자 안에서 쓸쓸히 흩어지고 있었다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고요아침, 2005)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51) / 눈물겨운 투병기 - 배우식의 '목숨은 외롭다'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해설>
배우식 시인은 한쪽 눈 실명에 이어 다른 쪽 눈까지 실명 위기에 처했다. 눈 수술을 앞두고 집 근처 큰 병원에 가서 진찰을 다시 받아보았는데 영판 다른 결과가 나왔다. 뇌종양이 커져 시신경을 눌러 생긴 결과이기에 뇌종양 제거 수술을 해야지 무슨 눈 수술이냐고 오진을 지적했다. 2002년에 국내 거의 최초로 로봇 수술로 광명을 되찾기는 했으나 그 과정에서 생과 사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다. 뇌척수가 콸콸 쏟아지고 뇌막이 터지는 위기의 순간을 넘기면서 배우식은 회복에 성공해 시를 썼고 시집을 냈다. 이 작품에는 수술 후 전신마취에서 깨어난 시인이 홀로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검은 혓바닥으로 달려드는 죽음! 지금도 생과 사를 넘나드는 수술이 어느 병원에서 행해지고 있으리라.
중환자실에서 깨어나니 위로해주는 이 아무도 없는데 의식은 말짱하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수술 전보다 더 심하게 엄습한다. 소생에 대한 희망을 갖기는커녕 “목숨이 온몸을 태운다”는 절망적인 상태에서 자신의 사후 모습을 보기도 한다. 회복이 될 것인지 악화일로로 갈 것인지 모르겠는데 몸은 아프고……. “죽음이 끌고 가는 검게 탄 목숨 뒤를” 따라가는 두 눈동자의 주인공은 자신일 것이다. 저승길은 혼자 가는 법이다. 시인이 직접 겪은 아픔과 절망이라 그런지 실감나는 투병기다.
출처 : 뉴스페이퍼(http://www.news-pap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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