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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파쿠르
송은숙
창틀에 앉아 거울놀이하던 걸 생각해 봐
거울에 반사된 햇살은 책상을 지나 엎드린
너의 손등을 지나 어깨를 지나 목덜미로 달력으로 천장 모서리로 천장으로
천장으로 천장으로 천장으로
그날 그는 창틀에 앉아 있었고
너는 그늘에 가린 그가 누군지 모르고
그가 움직이는 거울에 따라 햇살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또 이쪽으로
그러니까 전단지 사무실에서 치킨집으로 편의점 계산대로
커피숍 그라인더 뒤로
이건 햇살의 발자국일까
너의 손등을 지나 어깨를 지나 목덜미를 지나 잠시 고개를 든
너의 눈을 비추던 햇살에 눈을 찡그렸을 때 알아차렸지
햇살이 너를 지목했다는 것을
똑바로 찌르는 손가락으로
너는 무기력하게 끌려 나오고 그때부터
너의 달리기가 시작된 거야
거울에 비치는 햇살과 네가
누가 빨리 이곳을 떠나 저곳에 닿는지
저곳은 얼마나 멀고 낯선지
저곳은 얼마나 어둡고 밝은 곳인지
천장을 건너뛰던 햇살은 스파이더맨처럼
잠시 천장에 매달려 있어
거침없이 질주하다 잠시 잠깐 아주 환하게, 찡긋
이제 네 차례야 이곳에서 뗀 발이 저곳에 닿기 전
너는 날개가 솟아났지, 너는
허공을 건너뛰고 있지
―계간『시사사』(2021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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