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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가 주인공인 영화의 엑스트라들
이민하
우리는 누운 자세로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했다
말을 하면 안 된다
딸꾹질도 안 된다
쓰러지면서 최선을 다해 마주 누웠다
눈빛에 눈빛을 더하면서
한쪽 눈을 찡긋하면 반갑다는 거고
동공이 자꾸 흔들리면 불안과 초조
두 눈을 깊이 감고 있으면, 오늘도 무사히!
이런 것쯤은 정하지 않고도 가능해서
우리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감정보다는 스웨터! 같은 것
영혼보다는 크림빵! 같은 것
결국엔 말에 가까워져서
눈을 오므리면: 너무 춥지 않아?
눈알을 빙빙 돌리면: 잠 못 자서 어지러워
흰자위를 납작 뒤집으면: 나도 배고파
그러나 꼬르륵거리면 들켜버리고
들키고 나면 이 바닥에서도 쫓겨나니까
우리는 누운 자세로 숨을 수 있는 것을 생각했다
잠을 자면 안 된다
하품도 안 된다
반질반질 네 귀퉁이가 닳은 대본처럼
타인의 대사에 죽죽 그은 밑줄처럼
밤이 이어지고
비가 뿌려지고
눈 깜박깜박: 오늘은 시체들이 꾸는 꿈 같아
눈 깜-박: 꼭 진짜 같지 않니?
눈 깜박 깜박 깜박: 그래, 마술 같구나
이렇게 리얼한 날에는 죽음도 속일 수 있어서
침묵을 암기하고
침묵을 재해석하고
침묵이 침묵을 속여가면서
우리는 무사히 퇴장할 때까지
끝내 살아 있었다
죽음에 죽음을 더하면서
―월간『현대문학』(2021,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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