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수술 전야 / 퇴원 전야 -안규례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1. 29.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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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전야

 

안규례

 

 

시리도록 맑은 하늘 아래

창문 너머 누군가의 웃음소리

엄마는 지금 무얼 하고 계실까

전화라도 드려볼까

 

혼기 찬 아들은 집 나갈 생각 아니하고

장롱 속 다 뒤져도

계절에 맞는 옷은 보이지 않네

 

돌아보면 몸에게 미안한 세월

언제나 새것인 양 아침부터 밤까지

부려먹기만 했지

 

호강 한번 시켜 준 적 있었던가

값비싼 보약 한 재 지어줄걸

 

평생 고장 안 날 것 같던 몸속에

저들끼리 뭉쳐서

스크럼 짜고 있는 세포들

지금은 그냥 두면 안 된다는

의사의 단호한 한마디

대롱대롱 귓전에 매달려 있고

 

이 밤은 길기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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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 전야

 

안규례

 

 

병실 창가에 메아리처럼 새털구름 몰려왔다 몰려가는 가을날

부모님이 물려주신 신체의 일부분을 개밥 던져주듯 병원에 떼어주고 내일이면 간다

 

링거소변 주머니 혈액 주머니를 주렁주렁 매달고

통증과 싸웠던 301병동 201호의 시간들

 

잔영처럼 구토와 어지럼증은 지금도 간간이 찾아왔다 가지만

인생에 있어 이 밤이 아픔의 종지부를 찍는 마지막 밤이었으면 좋겠다

 

벌써 몇 번째 수술대에 올랐던가

구급차 소리에도 두려움이 밀려온다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빠져나간 병실에 소등을 하고

사방으로 커튼을 치며 눈을 감아도 잠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실루엣 같은 불빛 사이로 울컥울컥 복받쳐 오르는 서러움

어질러진 침상을 정리하며 더러는 상처를 핥듯 축 늘어진 몸을 만져본다

 

이 밤이 지나면 퇴원하는 날 그래 잘 있거라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쓰레기로 버려질 나의 분신들아

미안하구나혼자 집으로 돌아가서

 

 

 

―시집『눈물, 혹은 노래』(도서출판 청어,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