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배추흰나비의 여행 /김남권​​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2. 8. 16:46
728x90

배추흰나비의 여행

 

김남권

서울행 케이티엑스 3호차에

배추흰나비 한 마리 탑승했다

강릉에서 무임승차한 배추흰나비는

당최 내릴 생각이 없다

승무원이 불러도 본체만체,

승객들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뜻 모를 미소를 던진다

3호차가 특실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지도 않다

수영복 차림으로 승차했는지 날개를 펄럭일 때마다

바다냄새가 났다

여름 한낮, 하루 종일 배추밭에 엎드려 지냈던

젊은 날의 어머니는 정작 배추 한 잎 먹어보지도 못한 채

장다리꽃이 다 지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뿌리에 바람이 들고 이파리가 노랗게 물들었지만

씨앗을 보러 오지도 않았다

이미 오십 수년 전의 일이었다

기차가 양수리 철교를 지날 때쯤

배추흰나비는

차창 밖에서 날개에 푸른 물이 든 채로

나를 따라왔다

케이티엑스3호차 객실 가득

배추흰나비들이 몰려와 아직 여물지 않은 어머니의

배추를 뜯어 먹고 있었다

 

 

―『시문학』(2021, 2월호)

―시집『나비가 남긴 밥을 먹다』(詩와에세이,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