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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철이 고철에게
김남권
고철 시인이 고철을 팔러 왔다가 짜장면을 사줬다
1kg에 280원하던 고철 값이
130원밖에 안한다며 고철 판 돈 절반을 헐어
평창시장 골목 칠천각에서 짜장면을 사주고
고철이 다 된 1톤 트럭을 타고 멧둔재를 넘어 갔다
도로공사를 하다 그라인더 날이 튀는 바람에
여섯 바늘이나 꿰맨 다리에 시의 붕대를 감고 절룩거리며
가난한 나를 찾아온
고철 시인은 고철 판 돈 절반을 헐어 짜장면 곱빼기를 사주었고
덕분에 가난한 허기를 때운 나는 원동재를 넘어 영월로 갔다
내다 팔 고철도 없고 내다 팔 시도 없는
나는 ‘내가 자주 가는 집’에 들러 외상으로
막걸리에 산초 두부나 시켜놓고
노가다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고철 시인을 불러 늦은 저녁
세상사는 이야기나 들어보는 수밖에,
그나저나 내 시는 1kg에 얼마나 받으려나
내일은 그동안 써놓은 원고 뭉치를 들고
고물상 저울에 통째로 올라가
더 쓸모없어지기 전에 비만한 몸뚱이나
팔아야겠다
―시집『나비가 남긴 밥을 먹다』(詩와에세이,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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