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고철이 고철에게 /김남권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2. 8.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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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철이 고철에게

 

김남권

 

 

고철 시인이 고철을 팔러 왔다가 짜장면을 사줬다

1kg에 280원하던 고철 값이

130원밖에 안한다며 고철 판 돈 절반을 헐어

평창시장 골목 칠천각에서 짜장면을 사주고

고철이 다 된 1톤 트럭을 타고 멧둔재를 넘어 갔다

도로공사를 하다 그라인더 날이 튀는 바람에

여섯 바늘이나 꿰맨 다리에 시의 붕대를 감고 절룩거리며

가난한 나를 찾아온

고철 시인은 고철 판 돈 절반을 헐어 짜장면 곱빼기를 사주었고

덕분에 가난한 허기를 때운 나는 원동재를 넘어 영월로 갔다

내다 팔 고철도 없고 내다 팔 시도 없는

나는 ‘내가 자주 가는 집’에 들러 외상으로

막걸리에 산초 두부나 시켜놓고

노가다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고철 시인을 불러 늦은 저녁

세상사는 이야기나 들어보는 수밖에,

그나저나 내 시는 1kg에 얼마나 받으려나

내일은 그동안 써놓은 원고 뭉치를 들고

고물상 저울에 통째로 올라가

더 쓸모없어지기 전에 비만한 몸뚱이나

팔아야겠다

 

 

 

―시집『나비가 남긴 밥을 먹다』(詩와에세이,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