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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프리카
김권곤
채소밭에 모인 다문화가족
파프리카 브로콜리 아스파라거스
기후와 토양이 다른 땅에서 몸살 앓는 야채들
진딧물의 텃세에도
잎을 키우며 억척스럽게 살아간다
채소밭에 핀 파프리카꽃
하얀색 꽃잎이 토종 고추꽃과 비슷하다
지구촌 어디에 살던
고추 집안 유전자는 속일 수 없나 보다
유럽에서 시집온 옆집 새댁
말을 배우는 아이들처럼
꼬리 잘린 반말에 발음이 빗나가
할미들이 몇 번씩 짧은 말꼬리를 이어준다
상갓집 잔칫집에 먼저 달려가
서툰 솜씨로 일손을 돕는 이방인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려 애쓰는 모습이
샐러드나 잡채에 들어간 파프리카처럼 돋보인다
마을 부녀회장이 꿈이라는 그녀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묻자
가족을 이루고 사는 이곳이
자기 고향이라고 손짓 섞어 말한다
―『모던포엠』(2022,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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