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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쓰는 시간
이서연
어디서 시작된 무엇으로의 오늘이 아니라
속도를 잊은 시간이 잠시 날개를 접는 순간이다
-어떤 존재였는가
한 줄 쓰다, 하루가 어제의 그림자로 다시 오지 않도록
창문 밖 지나가는 바람으로 지워본다
살다 온 먼 시간을 건너올 때 바뀐 생명이었을까
남의 삶 심부름 온 듯 문득 낯설어지는 밤
오늘도 완성되지 못하는 나를 잠시 놓으며
녹슬지 않도록 마음 하나에 촛불을 켜 본다
고이는 이슬만큼 사라지는 몸뚱이
그 순간, 길이 되는 영혼처럼 빛이 자란다
-그냥 빛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시간의 테두리에서도
마음 털끝까지 완벽히 태워야 할 이유다
-그래, 결코 그냥 빛나지 않지
마침표 없이 다시 한 줄 쓰고
어제보다 깊었던 하루를 벗어본다
일기마저 길어질까
―『시와소금』(2022,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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