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트랙 /이화은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5. 7. 09:00
728x90

트랙

 

이화은

여자가 쉐타를 푼다

남자의 뺨을 때리던 오른쪽 팔이 없어졌다

구경하던 왼쪽 팔이 없어졌다

잠시 여자가 손을 멈추고 인공눈물을 넣는다

다시 목을 푼다 목을 꺾듯

아직도 붉은 꽃을 가슴에서 풀어낸다

꽃이 사라지자 가슴도 사라졌다

트랙을 달리는 마라톤 선수처럼

여자가 달린다 여자를 따라 빙빙 털실이 달린다

트랙을 수백 바퀴 돌아도

여자의 눈물을 훔쳐간 도둑을 잡을 수가 없다

털실 뭉치가 자꾸 커진다

남자를 다 풀어낸 여자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다시 눈물을 넣는다

아무도 여자가 운다고 말하지 않는다

 

 

 

–시집『절반의 입술』(파란, 2021)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나가다 /나희덕  (0) 2022.05.07
여행은 끝나고 /나희덕  (0) 2022.05.07
절반의 입술  (0) 2022.05.07
시론 /이화은  (0) 2022.05.07
명랑한 계란 /이화은  (0) 2022.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