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경전 1 /이태호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6. 1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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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1

 

이태호

 

 

언젠가 난 어렵사리 맹자 7편을 읽었고

지금은 갈피 닳은 '아내'를 읽는 중이네

필생을 두고 다 못 읽은

책이 또 있네

'어머니'

 

 

 

ㅡ시조집「달빛 씨알을 품다」(청어, 2022)

 

 

 

  우리 어머니는 딸을 낳지 못하고 아들만 셋을 두었는데 그래서 내가 나서 자라던 우리 집에서는 여자라고는 엄마밖에 없었다. 집안에서 여자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다 보니 여자는 내게 있어 늘 머나먼 미지의 세계처럼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먼 동산에 피어오르는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보이기는 보이나 만질 수는 없었고 가까이는 가보고 싶은데 가까이할 수도 없었다. 아무도 모르게 그저 맘속 깊이 간직한 보석처럼 여자란, 여신처럼 신성하고 신비한 존재여서 함부로 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꽃에서 사는 어여쁜 요정처럼 향기로운 내음이 멀리서도 풍기는 것 같았다.

 

  나중에 장가를 가게 되면 당연히 딸이 생길 거라는 생각을 하였다. 이런저런 상상 속에 여자아이의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정말로 첫 딸을 얻었고, 생명의 신비에 마냥 놀라워했고 내 아이가 여자라는 사실에 또 한 번 감탄을 했다. 둘째 역시 내 어릴 적 동경과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여자로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이 그저 행복하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대선이 선거가 끝나고 아니 대선 공약으로 여성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남녀평등 세상이 되기는 되었다지만 엄밀히 따져 보면 같은 사람이기 전에 여자는 몸의 구조부터 다른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두고 정치권까지 편을 가르고 싸울 일이었을까.

 

  보라, 세상은 반이 여자고 우리들의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내가 낳은 딸 모두가 여자다. 세상 모든 남자들은 그 여자들 몸을 빌려서 세상을 나온 것이다. 해서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평생을 갚아도 못 갚을 빚을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졌으며 죽을 때까지 갚고도 못 갚으면 저승에 가서라도 갚아야 할 빚이다.

 

  시의 화자가 말하는 아내도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아내는 읽을수록 어려운 독서라 차근차근 한 장 한 장 넘겨서 정독하며 숙독을 해야 하지만 어머니는 평생을 두고 읽어도 못다 읽은 독서인 것이다. 그래서 아내와 어머니라는 책은 그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더 소중한 보물 경전과 같은 것이다.

 

 

 

언젠가 난 어렵사리 맹자 7편을 읽었고

지금은 갈피 닳은 '아내'를 읽는 중이네

필생을 두고 다 못 읽은

책이 또 있네

'어머니'

 

 

 

ㅡ시조집「달빛 씨알을 품다」(청어, 2022)

 

 

 

  우리 어머니는 딸을 낳지 못하고 아들만 셋을 두었는데 그래서 내가 나서 자라던 우리 집에서는 여자라고는 엄마밖에 없었다. 집안에서 여자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다 보니 여자는 내게 있어 늘 머나먼 미지의 세계처럼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먼 동산에 피어오르는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보이기는 보이나 만질 수는 없었고 가까이는 가보고 싶은데 가까이할 수도 없었다. 아무도 모르게 그저 맘속 깊이 간직한 보석처럼 여자란, 여신처럼 신성하고 신비한 존재여서 함부로 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꽃에서 사는 어여쁜 요정처럼 향기로운 내음이 멀리서도 풍기는 것 같았다.

 

  나중에 장가를 가게 되면 당연히 딸이 생길 거라는 생각을 하였다. 이런저런 상상 속에 여자아이의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정말로 첫 딸을 얻었고, 생명의 신비에 마냥 놀라워했고 내 아이가 여자라는 사실에 또 한 번 감탄을 했다. 둘째 역시 내 어릴 적 동경과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여자로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이 그저 행복하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대선이 선거가 끝나고 아니 대선 공약으로 여성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남녀평등 세상이 되기는 되었다지만 엄밀히 따져 보면 같은 사람이기 전에 여자는 몸의 구조부터 다른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두고 정치권까지 편을 가르고 싸울 일이었을까.

 

  보라, 세상은 반이 여자고 우리들의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내가 낳은 딸 모두가 여자다. 세상 모든 남자들은 그 여자들 몸을 빌려서 세상을 나온 것이다. 해서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평생을 갚아도 못 갚을 빚을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졌으며 죽을 때까지 갚고도 못 갚으면 저승에 가서라도 갚아야 할 빚이다.

 

  시의 화자가 말하는 아내도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아내는 읽을수록 어려운 독서라 차근차근 한 장 한 장 넘겨서 정독하며 숙독을 해야 하지만 어머니는 평생을 두고 읽어도 못다 읽은 독서인 것이다. 그래서 아내와 어머니라는 책은 그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더 소중한 보물 경전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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