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들녘
안규례
어쩌까 어쩌실까
구순의 울 아부지 올해도 또
손수 지으신 농산물 보내셨네
이 폭염 이 염천에 구부러진 허리로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거친 손 눈에 보이네
해마다 올해만 올해만 하시더니
이러다가 내 손 대신
일손 잡고 돌아가시것네
젊은 날엔 탄광에서
석탄 가루 반찬 삼아 드시고
환갑이 지난 자식 지금도 품고 계시네
복중 뙤약볕 피한다고
새벽이슬 밟으며
풀 뽑고 거름 놓아 길러 땄을
옥수수, 감자, 콩, 검은 봉지에
10남매 얼굴도 같이 넣어
봉다리 봉다리 꽁꽁 잘도 싸매셨네
예나 지금이나
야물딱진 울 아버지!
―시집『눈물, 혹은 노래』(도서출판 청어,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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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과 사랑과 어머니는 시의 진부한 소재가 된 지 이미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시인들이 고향과 사랑과 어머니를 시 속에서 불러내는 것은 고향과 사랑과 어머니는 인류 영원의 주제이고 불러도 불러도 목마른 그리움의 대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해서 모름지기 시인이라면 어머니와 관계된 시를 한 편쯤 썼을 것이고 대략 몇 편쯤 가지고 있는 시인들도 많을 것이다. 더 나가 김초혜 시인은 어머니 시를 시리즈로 썼을 뿐 아니라 아예 전편을 어머니 시로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만큼 어머니는 마음의 고향이고 간절하게 부르고 싶은 이름이기도 하다.
이렇게 어머니 시 사모곡은 참으로 많고 많은데 반면 아버지 시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어머니도 그렇지만 살아온 시대와 환경과 여건에 따라 아버지를 추억하고 그리는 방식도 다양하다. 나 역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의 시를 끄적거려 놓은 것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어머니에 못 미치고 있어서 요즘 와서 새삼 송구스럽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아버지 또한 어머니 못지않게 그리운 것은 우리가 이 두 분의 몸을 빌려서 세상으로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가 이 세상에 안 계신다면 더욱 그리웁고 보고 싶은 것이 어찌 인지상정이 아닐까. 아버지의 부재가 주는 그리움을 다행히도 안규례 시인에게는 없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아버지는 시인에게 걱정을 안겨주고 있다.
한평생 자식에게 자신이 지은 농산물을 나눠주는 재미로 살아가시는 아버지가 구순의 연세에도 농사를 짓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걱정하는 자식들의 마음을 모를 리 없는 아버지지만 아버지가 농사를 그만 놓을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것이 아버지의 인생이요, 몸에 밴 생활이기 때문일 것이다. 효도 아들이 아버지가 밭에 나가 일하시는 걸 보고도 말리지 않았다고 부부 싸움하는 것을 티브에서 본 적이 있는데 실은 며느리가 말리고 말려도 아버지 스스로 밭에 나가신 것이다.
일생을 통해 몸에 배인 생활을 못 하게 하는 것도 불효라는 생각이 들지만 자식의 입장에서는 무리하다 큰일날까 염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아버지는 자식들의 마음을 받아들여 재미 삼아 운동 삼아 조금씩만 몸을 움직여 주셨으면 좋겠는데 그 아버지의 고집을 자식인들 어찌 말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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