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선운사 동백 /이이화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1. 2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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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동백

 

이이화

 

 

햇살 노랗게 만개하는 춘삼월에는

선운사 육덕 좋은 절집 여인네

부처님의 엄중한 눈길 피해

새빨간 립스틱으로 치장하고

사랑을 안다고 큰소리치는

전국의 사내들을 불러 모은다지

봄바람으로 살랑대는 마음 들킬까

복분자주 술잔 속에

불콰하게 감추고

장어구이 안주빨이 힘 좋게 불뚝거리면

새빨갛게 농익은 입술 훔치고 싶은 사내들

안달복달이 난다지

줄 듯 말 듯 아찔하게 애간장 녹이다

매몰차게 거절하는지 저 요염 앞에

헛물만 켜던 못난 자존심이

머리 위에 내려앉는

노을 향해 삿대질해 대다가

내년을 기약하고 돌아선다지

 

 

 

―시집『칸나가 피는 오후』(그루, 2021)

 

 

 

------------------------------다시 가보고 싶은 선운사-------------------------

 

  선운사는 사찰로 유명하지만 선운사 하면 먼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시를 쓰는 사람은 시를 떠올리겠고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꽃을 떠올리겠는데 사람에 따라서 동백보다 어쩌면 꽃무릇을 먼저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꽃과 잎이 따로 피고 져 같이 만나지 못하는 운명을 빗대 상상화라고 불리는 꽃무릇.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선운사의 꽃 아이콘은 동백꽃일 것이다.

 

  선운사 시 하면 떠오르는 몇 편의 시도 있다, 임영조, 유안진, 김욕택 시인의 선운사 동백꽃 제목의 시를 비롯하여 “꽃이/피는 건 힘들어도/지는 건 잠깐이더군/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아주 잠깐이더군”으로 시작되는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도 있고 그래도 그 중의 백미 시는 부르고 부르다가 너무 불러 목이 쉬어 버린 육자배기 걸쭉히 목매는 서정주 시인의 ‘선운사 하구’가 있다.

 

  그럼 내게 있어 선운사는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할까? 어쩌다 보니 개인 여행을 별로 해 본 적 없고 단체로 우르르 몰려가는 나들이를 하다 보니 선운사를 가보기는 했는데 꽃이 없는 동백은 앙꼬없는 찐빵이라고 할까, 동백과 꽃무릇 피는 봄과 가을을 다 놓쳐서 갔으니 앙꼬없는 찐빵만 먹고 온 셈이다.

 

  그래도 먹을 것은 먹고 볼 것은 다? 보고 왔다. 고창 읍성을 주마간산으로 휘돌고 도착한 고창 선운사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배를 채우는 일이었다. 선운사 입구에서 먹어본 풍천장어와 복분자는 참 맛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뭐 몇 번 먹어보지 않아서 비교하기도 그렇지만 1인분 300그램씩 각 개인접시에 토막토막 썰어서 나왔다. 거기다가 복분자 술 한 병이 공짜로 곁들여 나왔는데 장어와 복분자 모두 거시기에 좋다는 음식이 아니던가. 그래서 그러한지 장어는 더 맛나고 향기로웠다고 할까.

 

  식후에 선운사 극락교 건너기 전 왼쪽 도솔암으로 먼저 올라갔다. 선운사는 내려오다가 들리기로 하고. 도솔암까지 이정표에 2. 3키로 나와 있다. 마애불을 보고 가파른 계단을 100미터쯤 올라가는 도솔천 내원암까지 다녀오는데 2시간 정도 걸렸다. 도솔암 올라가는 도로와 도보로 갈 수 있는 길이 따로 있었지만 차도를 이용했다. 올라가는 좌우로 돌탑을 볼 수 있었는데 돌탑은 언제봐도 정겨웠다. 백과사전에는 수령 600년이라는 거대한 소나무 장사송도 보았고 내원암 산신각에도 절 한배를 올렸다. 사찰의 건물은 전이라고 불리는데 절의 맨 꼭대기에는 산신을 모신 산신각이 있다. 산신각은 초기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올 때 샤머니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을 절로 올 수 있게끔 지어 놓은 건물이라고 한다.

 

  서설이 길었지만 소개한 '선운사 동백' 제목의 이 시는 이이화 시인의 <칸나가 피는 오후> 첫 번째 시집의 첫 장에 놓인 시다. 첫머리에 놓인 시는 시인이 이 시를 다른 이에게 먼저 선 보이고 싶은 시라고도 할 수 있겠다. 시는 옛정서와 함께 살짝 에로티즘 맛도 난다. 시를 읽는 재미는 참신한 언어, 좋은 내용, 낯설음, 표현의 미학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읽는 재미 또한 한몫을 한다. 읽는 재미도 곁들었다는 뜻이다.

 

  시에서처럼 내년을 기약하지는 못하겠지만 동백도 꽃무릇도 진짜배기를 못 보고 왔으니 선우사가 나중에 시간 내서 또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선운사가 그리웁고 다시 또 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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