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온 날 저녁
박창기
이웃 일 도우러 갔던 아내가 무서울까 봐
늦게 오는 가로등 불빛 대신 마중 나간다
오늘은 예정에 없던 과메기를 깐 덕으로
반주 안주로 안성맞춤이라 여겼는데
촉촉한 꼬리 부분은 잘 먹는다
미용에 좋다고 건강에 좋다고 그리 꼬셨건만
꼬들한 꼬리 부분 외엔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쌈 싸서 잘 먹는다
허락된 소주 두 잔으로 잉여 과메기를 처리하기엔
그렇고 해서 눈치를 본다
따뜻한 눈빛을 얹어 바라보면 혹여 보시라도 있을까
기대해 보는 것이다
이따금 배려를 받는 날은
불콰한 술맛이 두 배로 늘어난다
아내의 대단한 선심에 나는 그만 흐뭇해져
‘나 무엇이 될꼬하니’ 라는 풍류로 응답한다
나를 건강하게 오래 살게 하려고 애쓰는 아내의 관심
이승에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더 열심히 더 사랑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힌다
바깥은 하얀 천지, 거실은 따뜻한 관심 천지
ㅡ시집『돌아가는 길』 (그루, 2021)
과메기는 경북 포항, 울진, 영덕이 주산지며 그중 구룡포가 유명하다고 알려져 있다. 과메기는 청어로 만드는데 한동안 청어가 흉년이 들면서 꽁치를 대타로 만들기도 하였다. 과메기에는 피로회복, 빈혈 예방, 피부, 숙취, 혈관 건강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음식을 섭취할 때 맛으로 먹지 영양을 굳이 따져가면서 먹지는 않는다.
맛있는 음식을 두고 맛나게 먹으면 그만이지 더운 음식이니 찬 음식이니 따지는 것은 뭣하지만 나는 과메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냉한 몸을 가진 소음 체질인 나에게 찬 음식인 과메기가 잘 맞지도 않지만 무엇보다 내 입맛에 맞지 않는다. 해서 내 돈 주고 사 먹지도 않지만 모임에 가서 이 음식을 시켜도 하나 정도 맛이나 볼까 시에서 나오는 화자의 아내처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시에 나오는 화자의 아내도 나처럼 냉체질인지는 모르지만 과메기를 별로 좋아하시지 않았나 보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웃 일 보고 돌아온 아내가 여느 날과는 다르게 쌈을 싸서 잘도 먹는다. 건강에 좋다고 그렇게 권해도 손사래치던 아내가 맛나게 먹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화자는 마치 내 입에 음식이 들어가는 것처럼 흐뭇하다. 거기에다 반주로 추가되는 소주조차 입에 착착 달라붙어 달기만 하다.
사실 맛나는 음식을 앞에 두고 생각나는 사람이 부부 말고 또 누가 있으랴. 밖에는 눈이 오거나 말거나 부부 둘이서 소박한 음식을 나누는 정겨운 모습이 창에 어리고 늙어가면서 서로의 건강을 걱정하는 부부애가 깊어가는 겨울밤을 행복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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