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마음이 가난해지면
정호승
마음이 가난해지면 지옥도 나의 것이다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마음이 가난해지면
비 온 뒤 지옥에 꽃밭을 가꾸기로 했다
채송화 백일홍 달맞이꽃을 심어
마음이 가난해질 때마다 꽃 한 송이 피우기로 했다
감나무도 심어 마음이 배고플 때마다
새들과 홍시 몇 개는 쪼아 먹기로 했다
마음이 가난해지면 지옥의 봄날도 나의 것이다
지옥에 봄이 오면 당신을 사랑할 수 있다기에
죽어도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기에
지옥에 텃밭도 가꾸기로 했다
상추 고추 쑥갓 파 호박을 심어
호박잎에 저녁별을 쌈 싸 먹을 때마다
마음은 더욱 가난한 흙이 되기로 했다
흙을 뚫고 나온 풀잎이 되기로 했다
ㅡ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창비, 2022)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가에 서서 /안규례 (0) | 2022.10.05 |
---|---|
곰 /손진은 (0) | 2022.10.03 |
사전적 의미 /박선미 (0) | 2022.09.26 |
갈림길 /신승철 (0) | 2022.09.09 |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 ~ 100 (목록과 시) (0) | 2022.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