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안착 /이주송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11. 3.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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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착

 

이주송

 

철퍼덕, 주저앉은

한 무더기의 소똥

이렇게 아름다운 안착이 있을까요

 

​소의 근력으로 초록을 모두 탕진한

소용을 다 바치고 난 뒤의 표정

제가 가진 본성과 중력이

가장 평온한 모습으로 내려앉은

착지

 

​모든 힘이 털렁 빠져나온 저 똥에는

초식의 감정과 순경順境이 있습니다

막 도착한 순하디순한 온기에는

풀 속에 밴 이슬도 살아 있어

김이 사리질 때까지 경건해집니다

 

​자욱한 안개가 쟁기와 보습을 끌고

어기적어기적 새벽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산밭이 꺼벅거리며 축축한 등을 내밉니다

 

​소는 거친 콧김을 내뿜다가

꼬리 흔들어 고요를 쫓습니다

주인은 워워 한 박자 쉬며

언덕 아래 풍경을 되새김합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연꽃 송이 같은 소똥

좌선을 다 끝내고 나면

한 움큼의 풀씨 경전이 되겠지요

 

 

 

―시집『식물성 피』(걷는사람,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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