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밥 /이삼현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11. 2. 15:57
728x90

 

이삼현

 

 

십여 년째 골방에 갇혀 웅크리던 독거가

만근의 짐을 부려놓았다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다가 넘어진 성자처럼

일요일 아침 교회 가던 길에 쓰러져 짐이 되었다

일곱 남매를 낳아 길렀지만

하루건너 사거리

동네 의원(醫院)을 전전하며 불던 삭풍이었다

멀어져 가는 천 길 어둠 속

끈이 풀린 손발을 축 늘어뜨린 채

5촉짜리 정신줄만 남아 깜박거리는데

 

맏이가 맡아야 한다

막둥이 집으로 옮겨야 한다

멀어도 셋째 딸네가 편할지 모른다

가까운 둘째 딸이 모셔야 한다

 

한동안 축구공이 되어

이리 차이고 저리 치이며 굴러다니다가 겨우 하룻밤

맏아들 침대에 누운 지린내를 피해 흩어진 자식들

짐은 두 팔을 벌려 안아 주었지만

품이 없는 자식들은 서로 밀어내기에 바빴다

 

동트자마자

맏며느리 자동차 뒷자리에 실려 요양원으로 가는 길

심하게 기울어진 어미를 떠받친 막둥이를 알아보고

짐이 더듬더듬 말을 잇는다

 

밥은 묵었냐?

 

 

 

―『모던포엠』(2022년 11월호)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착 /이주송  (0) 2022.11.03
식물성 피 /이주송  (0) 2022.11.02
초승밥 /홍경나  (0) 2022.11.02
가을들 /김령  (1) 2022.10.29
돌멩이의 노래 /염혜순  (0) 2022.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