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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이삼현
십여 년째 골방에 갇혀 웅크리던 독거가
만근의 짐을 부려놓았다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다가 넘어진 성자처럼
일요일 아침 교회 가던 길에 쓰러져 짐이 되었다
일곱 남매를 낳아 길렀지만
하루건너 사거리
동네 의원(醫院)을 전전하며 불던 삭풍이었다
멀어져 가는 천 길 어둠 속
끈이 풀린 손발을 축 늘어뜨린 채
5촉짜리 정신줄만 남아 깜박거리는데
맏이가 맡아야 한다
막둥이 집으로 옮겨야 한다
멀어도 셋째 딸네가 편할지 모른다
가까운 둘째 딸이 모셔야 한다
한동안 축구공이 되어
이리 차이고 저리 치이며 굴러다니다가 겨우 하룻밤
맏아들 침대에 누운 지린내를 피해 흩어진 자식들
짐은 두 팔을 벌려 안아 주었지만
품이 없는 자식들은 서로 밀어내기에 바빴다
동트자마자
맏며느리 자동차 뒷자리에 실려 요양원으로 가는 길
심하게 기울어진 어미를 떠받친 막둥이를 알아보고
짐이 더듬더듬 말을 잇는다
밥은 묵었냐?
―『모던포엠』(202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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