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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들
김령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지난 일 년간 널 아프게 한 거 미안해
너의 꿈을 꼭 이루길 바랄게
낡은 시집 사이에서 낙엽처럼 엽서가 떨어진다 도대체 나는 이 글을 누구에게 썼던 걸까 어느 밤에 나는 부치지 못한 편지를 썼던 걸까 그 많은 밤들과 골목들, 불이 꺼지지 않던 창
어떤 기억은 습자지처럼 얇아서 들어 올릴 수도 없다 구르는 술병과 담벼락에 기댄 비틀거리는 그림자와 어제 먹은 것들을 오늘 토해내던 잔디밭과
자췻집 툇마루에 놓여 있던 하얀 편지 봉투, 멀리 떠나온 도시에서 고향의 동생에게 당부하던 깨알 같은 글자들
어느 장마철 넘실거리는 냇물 위 떠내려간 새 신발 한 짝, 달밤이면 온 동네 아이들이 뛰어나와 엉켰다 떨어지던 그림자들
기억들은 바싹 말라 부스러지기 쉽지, 내가 체감하는 시간은 너와는 다른 시간, 어제는 반팔을 입다가 오늘은 목폴라를 입는다
ㅡ『시와문화』(2022,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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