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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쓰며 짖는 개에게
김명기
나도 살자고 한 일이라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어디 갈 곳이라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돌아갈 수는 없다
기억하는 것을 지우고
숙명이란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떤 관계는 참 비통하지
버리고 돌아선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어디선가 속죄를 대신할 사람이
너를 찾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벽에 머리를 찧으며 끊임없이
왜냐고 묻고 있지만 대답해줄 수가 없다
공손한 너를 데리고 저녁 한때를 걸어가던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오직 오늘만은 살아야겠다고 발버둥치는 우리는
같은 족속일지도 모른다
어느 편에도 서지 못하는 아나키처럼
서로의 슬픔을 막아서는 중이다
더 이상 맨발인 너를 위해 해줄 게 없구나
곧 체념이 친구처럼 옆에 와 누울 것이다
쏟아붓는 기원과 비통은 회랑으로 흩어질 뿐
아가 쉰 목을 내려놓고 그만 밥을 먹자
어제와 다른 첫 밤이 오고 있다
―『열린시학』(2022,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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