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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밤은 슬리퍼를 끌고
김미연
밤의 발자국이 찍히고 있다
골목을 빠져나간 빛의 그림자도 어둠에 덮이고
구겨진 말들이 도시의 골목에 뿌려진다
칠흑 속으로 하루의 꼬리가 기울고
둥지가 없는 비둘기 떼는
고가다리 아래 부리를 묻고 허기진 밤을 보낸다
막차는 긴 노선을 끌고 사라지고
길을 놓친 자정이 우두커니 정거장에 서 있다
역을 붙잡고 살아가는 불빛들
포장마차 백열등이 푸념 섞인 반쪽의 귀가를 붙잡아 앉힌다
이 도시는 잠들지 못한다
야식을 싣고 질주하는 오토바이는 밤의 맥박
24시 편의점 골목
슬리퍼를 끌고 온 불면이
충혈된 시간을 달래줄 술병 하나를 들고 나간다
절룩거리는 새벽이 그 뒤를 따라간다
거리를 방황하는 저 많은 외박과 가출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담뱃불에 밤의 심장이 타들어간다
―시집『지금도 그 이름은 저녁』(미네르바,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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