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젓가락 /최태랑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10. 24.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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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

 

최태랑

 

 

둘이 있어야 한 벌이 되는 젓가락

식탁 위를 휘젓고 다니는 저 날렵한 것들

누구와 짝이었는지도 잊어버리고 돌아다닌다

한 식당에 있으면서도 제짝을 모르고 산다

인연은 봄비처럼 왔다가 이별은 소나기처럼 간다

우연찮게 만나도 옛 기억을 모른다

수저통에 들어가면 모두가 한통속

둘이 같이 있을 때면 포개져서 울력을 한다

젓가락은 잡는 사람에게만 몸을 내준다

어떤 입에서 쪽쪽 빨리다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무심하게 입속을 드나든다

처녀 입에 들어갔던 것이 노인의 입속으로 들고

청년 입속에 들고 나던 것이 중년 여인 입속에 든다

일용직 노동자처럼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생을 살다 간다

 

 

 

―시집『초록 바람』(천년의시작,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