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젓가락
최태랑
둘이 있어야 한 벌이 되는 젓가락
식탁 위를 휘젓고 다니는 저 날렵한 것들
누구와 짝이었는지도 잊어버리고 돌아다닌다
한 식당에 있으면서도 제짝을 모르고 산다
인연은 봄비처럼 왔다가 이별은 소나기처럼 간다
우연찮게 만나도 옛 기억을 모른다
수저통에 들어가면 모두가 한통속
둘이 같이 있을 때면 포개져서 울력을 한다
젓가락은 잡는 사람에게만 몸을 내준다
어떤 입에서 쪽쪽 빨리다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무심하게 입속을 드나든다
처녀 입에 들어갔던 것이 노인의 입속으로 들고
청년 입속에 들고 나던 것이 중년 여인 입속에 든다
일용직 노동자처럼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생을 살다 간다
―시집『초록 바람』(천년의시작, 2022)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돌멩이의 노래 /염혜순 (0) | 2022.10.27 |
---|---|
악을 쓰며 짖는 개에게 /김명기 (0) | 2022.10.26 |
도시의 밤은 슬리퍼를 끌고 /김미연 (0) | 2022.10.24 |
베란다 /김미연 (0) | 2022.10.24 |
그 여름의 저수지 /김미연 (0) | 2022.1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