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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을 나눠 먹는 순두부
천수호
함께 순두부를 먹는 날이었다
순한 것이 우리를 수그리게 했고
뜨거운 것이 우리를 망설이게 했다
식당에는 순두부와 아무 관계가 없는
청국장 냄새가 진동을 하고
냄새까지 순해진 뚝배기를 앞에 놓고
둘은 숟가락을 넣었다 뺐다 했다
폐질환을 나눌까요 간질환을 나눌까요
가능한 많은 병을 나누고 싶어요
그렇게 다정해도 우리는 한 가정을 이루지 못했고
병명도 주고받지 못했다
주소는 달랐지만 통증을 나누기엔 적절한 사이
몇 개의 병을 예약하고
우리는 좀더 정중히 순두부를 퍼먹었다
뚝배기가 받는 절은
어떤 기원처럼 병을 잘 스미게 했다
―시집『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문학동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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