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수캐
공광규
수캐를 향나무 아래 매어놓고 키운 적이 있다
쇠줄에 묶였으나 나처럼 잘 생긴 개였다
나는 창문을 열고 그 개를 가끔 바라보았다
그 개도 나를 멀뚱히 쳐다보며 좋아했다
우리는 서로 묶인 삶을 안쓰러워 하였다
언젠가 한밤중, 창이 너무 밝아 커튼을 올렸다가
달빛 아래 눈부신 광경을 보았다
희고 예쁜 암캐가 와서 그의 엉덩이를 맞대고 있었다
화려한 창조 작업의 황홀경, 나는 방해가 될까봐
얼른 소리를 죽여 커튼을 내렸다
엄마 아빠의 그것을 본 것처럼 미안했다
나는 그 사건을 아무에게도 애기하지 않았다
그 개의 사생활을 그 개의 비밀을 지켜 주고 싶었고
그 암캐가 향나무 아래로 자주 오길 기대했다
암캐는 안보이고, 어느 날부터 수캐가 울기 시작했다
동네사람들은 개가 울어 재수없다고 항의했다
나는 개장수에게 전화하라고 아내에게 화를 냈다
헌 군화를 신은 개장수가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개장수는 철근으로 짠 상자를 마당에 내려놓았고
당황한 개는 오줌을 질질거리며 주저앉았다
개장수는 군홧발로 마구차며 좁은 철창에 개를 구겨넣었다
한 두 번 낑낑대다 발길질에 항복하던 슬픈 개
나는 공포에 가득 찬 개의 눈기을 피했다
폭력 앞에 비굴했던 기억이 떠올라 괴로웠다
개는 오토바이에 실려 짐짝처럼 골목을 빠져나갔고
나는 절망의 눈초리가 퍼붓던 개의 신음소리를 들었다
얼마후, 골목에서 어슬렁거리던 강아지떼를 보았다
아비 없이 쓰레기통을 뒤져서 먹이를 구하는
설설대는 강아지들을 거느린 슬픈 암캐
나는 그 암캐가 향나무 아래로 몇 번을 찾아왔었는지
팔려간 수캐에게 몇 번째 암캐였는지 모른다
수캐는 나에게 그걸 말하지 않았고 나는
알았어도 그걸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달빛을 잘 받는 목련나무 아래 수캐를 매어놓았더라면
그가 더 황홀한 일생을 보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미안하다, 평생을 묶여 살다 도살장으로 실려간 수캐.
-시집『소주병』(실천문학사, 2004)
2012-02-25 / 토요일, 22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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