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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변영로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기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어렴풋이 나는 지난날의 회상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안에 자지러지노나!
아,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 같은 봄비만이
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내리누나!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시선집 『한국의 명시』김희보 엮음
<최남선에서 기형도까지 1005편 총수록>
2010. 03.29 / 밤 23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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