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첫날밤/오상순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3. 31. 18:54
728x90

첫날밤/오상순

 


어어 밤은 깊어
화촉동방의 촛불은 꺼졌다.
허영의 의상은 그림자마저 사라지고…….


그 청춘의 알몸이
깊은 어둠 바다 속에서
어족(魚族)인 양 노니는데
홀연 그윽히 들리는 소리 있어.


아아……야!
태조 생명의 비밀 터지는 소리
한 생명 무궁한 생명으로 통하는 소리
열반(涅槃)의 문 열리는 소리
오오 구원의 성모 현빈(玄牝)이여!
머언 하늘의 뭇 성좌는
이 밤을 위하여 새로 빛날진저!


밤은 새벽을 배(孕胎)고
침침히 깊어 간다.

 


이 시의 '첫날밤'은 속세 인간사의 남녀 관계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열반의 문 열리는 소리"라는 구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를 종교의
경지에까지 승화시키고 있다.
시상이 집결된 대목은 "아야 ……야!"로서 태초 생명의 비밀이 터지는 소리
임을 강조하고 있다.


*침침히(沈沈)히 : 속력이 무척 빠르게.

 


-시선집 『한국의 명시』김희보 엮음
 <최남선에서 기형도까지 1005편 총수록>
2010. 03.29 / 낮 13시 46분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비/변영로  (0) 2010.03.31
별의 아픔/남궁벽  (0) 2010.03.31
샘물/김달진  (0) 2010.03.31
각설탕/유현숙  (0) 2010.03.31
오다 가다/김억  (0) 2010.03.31